유인저(柳仁著)
1109년 4월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로 있으면서, 여진족을 정벌하러 가기 전에 문하시중 윤관(尹瓘)과 함께 창릉(昌陵)에 나아가 제사를 올리고, 전쟁에 이기게 하여달라고 기원하였다. 같은 해 10월 전중감 지추밀원사(殿中監知樞密院事)에 임명되었다. 1111년 3월 병부상서(兵部尙書), 12월 수사공(守司空), 이듬해 2월 참지정사(參知政事), 9월 상서좌복야 판상서형부사(尙書左僕射判尙書刑部事)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1113년 5월 별세하니 왕이 친히 글을 지어 조문하고, 수사도 문하시랑평장사(守司徒門下侍郎平章事)를 추증하였다. 권문(權門)의 출신으로 여러 친구들과 사귀며 공부를 해서 과거에 합격한 뒤 관직이 재상의 지위에까지 올랐지만, 성격이 남에게 교만하지 않아 유자(儒者)의 풍도가 있다는 칭송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