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신(朴弘信)
조선이 건국되자 무예로서 갑사(甲士)가 되어 금군에 소속되었는데, 사직(司直)을 거쳐 호군(護軍)에 오르고, 1414년(태종 14)에 제물량(濟物梁)·병산포(竝山浦)의 만호 등을 역임하고, 행직(行職)으로 3군진무(三軍鎭撫)가 되어, 1418년에 중직대부(中直大夫) 사재감정(司宰監正)이 되었다가, 그 다음 해에 좌사금(左司禁)이 되었다. 1419년(세종 1)에 이종무(李從茂) 등으로 하여금 군사 1만 7000여 인과 전함 220여 척을 3군으로 나누어 거느리고 대마도를 토벌하게 하였다. 이때에 대신들이 박홍신이 다시 수군을 거느리면 바다 길을 잘 안다고 아뢰어, 좌군병마사가 되어 절도사 박실(朴實)에 예속되었다. 형 박언충도 중군병마사로서 함께 종군하였다. 대마도에 이르러 이망군(尼忘郡) 싸움에서 전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