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맞배지붕건물. 거동사는 신라 때 의상대사가 창건하였으며 조선시대까지 대찰이었다고 하나 자세한 내력은 전하지 않는다. 몇 차례의 중건과 중수를 거듭하면서 오늘에 이르러 지금은 비구니의 수도도량으로 일신하였다.
전 · 후면에만 설치한 공포(栱包)는 내외 삼출목으로 전면에는 여러 가지 초각을 한 데 반하여 후면에는 기능적인 모습 그대로 간결하게 처리하였다. 전면 공포의 구조는 두공부터 연초각(連草刻)하는 방식을 따르고 있으며, 초제공과 2제공 역시 초각되어 삼중으로 처리된 듯하고, 살미는 그 끝을 용머리모양으로 새겼다.
후면 공포에는 첨차 끝을 4분 원호(圓弧)로 교두를 굴리고 직각으로 자른 부위가 정방형에 가까운 점, 살미의 3분두(三分頭)나 메뚜기머리가 운각(雲刻)으로 처리된 모습 등은 조선 초의 양식으로 보인다. 내외 삼출목으로 구성함으로써 부득이 천장을 한 단 낮게 만들어 중도리 천장과는 층을 지었다.
천장은 다포집의 일반적인 수법인 우물천장으로 소란반자로 꾸몄다. 전면 3칸은 창호로 개방하였는데, 어간에는 4분합문을, 좌우 협간에는 3분합문을 두어 솟을 꽃살무늬로 장식하였다. 기둥은 모두 두리기둥으로 거대한 자연석 초석 위에 놓았고 우주(隅柱: 모서리기둥)에는 귀솟음과 흘림이 보인다.
원래 가구식인 기단은 지대석이 매몰되고 갑석은 보이지 않으며, 소맷돌이 현존하는 계단도 마모가 심하다. 내외부는 단청으로 장엄되었다. 외부는 다소 퇴락하였으나 내부는 영남지방의 전형적인 색조가 장엄하게 펼쳐져 화려하다기보다는 금모로(錦毛老)의 유현한 빛이 장중한 선율처럼 대웅전을 가득 메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