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선산읍 금동 보살 입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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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
조각
유물
문화재
신라시대의 보살상.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1976-1)(龜尾 善山邑 金銅菩薩立像(1976-1))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국보(1976년 04월 23일 지정)
소재지
대구 수성구 청호로 321, 국립대구박물관 (황금동,국립대구박물관)
정의
신라시대의 보살상.
개설

1976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경상북도 구미시(옛 선산군) 고아면 봉한2동 뒷산에서 사방공사를 하던 중, 금동여래입상 1구(국보, 1976-1 지정), 금동보살입상 1구(국보, 1976-2 지정)와 함께 출토되었다. 이들 세 구의 불상은 원래부터 삼존 형식을 이루면서 같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내용

이 보살상은 삼국시대 말기 금동보살상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는 매우 우수한 작품이다. 연화대좌 위에 오른쪽 무릎을 약간 구부리고, 자연스럽고 유연한 자세로 서 있다. 조각 수법도 매우 섬세하고 우수하며, 몸의 균형도 잘 맞고, 비교적 날씬한 형태이다.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그 정면에 화불(化佛)이 새겨 있어 이 불상이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얼굴은 둥근 편이며, 미소를 띠고 있다. 오른손은 들어올려 작은 연꽃봉오리를 가볍게 받쳤다. 왼손은 내려서 지물 또는 천의자락을 쥐었던 듯하나, 결실로 인해 정확한 모습은 알 수 없다. 목에는 목걸이를 걸고, 어깨에서 구슬 목걸이[瓔珞] 장식이 ‘X’자 모양으로 늘어졌다. 배 부분의 둥근 꽃무늬[花文樣] 장식으로 교차 연결되다가 무릎 옆으로 늘어진다.

몸에는 얇은 천의(天衣)를 걸치고 있다. 천의는 오른팔에 한 번 걸쳐지고 무릎 앞에 둥글게 드리워졌다. 그리고 다시 왼팔 위로 걸쳐져 그 끝을 대좌 위로 내려뜨렸다. 그러나 늘어진 부분의 천의는 파손되어 있다. 군의(裙衣)는 발밑까지 드리워지고, 음각선의 옷주름이 새겨져 있다.

대좌는 칠각형이며, 그 위에 두 겹의 연꽃잎을 조각하였다. 뒷면에도 앞면처럼 구슬 목걸이 장식이 교차되었고 옷주름도 잘 표현되었으며, 목 아랫부분에는 광배를 결합하기 위한 네모진 꼭지가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이와 같은 표현 양식상의 특색에서 이 불상은 중국 수나라 때의 금동보살상 양식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제작 연대는 대략 7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또한 출토지가 신라 영토였던 경상북도 선산(현 구미시)이라는 점에서, 신라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이 불상과 양식이 비슷한 불상으로는 부여 규암면 출토의 백제 금동관음보살입상 2구 중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불상을 들 수 있다. 보주를 들고 서 있는 자세나 구슬 목걸이 장식 등 형식 면에서는 기본적으로 같은 계통이다. 그러나 선산의 보살상이 더 발전된 양식을 보여주며, 기법 면에서도 훨씬 더 정교하다.

이 불상은 삼국시대의 신라 조각에서는 보기 드물게 우수한 조각 솜씨를 보이고 있어, 신라 말기의 조각 중 대표적이고 중요한 작품이다.

참고문헌

『삼국시대불교조각론』(국립중앙박물관, 1990)
『문화재대관』1 국보1(한국문화재보호협회, 대학당, 1986)
「선산 봉한이동 출토 금동여래·보살입상 발견시말」(강인구, 『고고미술』 129·130, 한국미술사학회,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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