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대좌와 광배는 남아 있지 않다. 전체에 도금의 흔적이 약간 남아 있고, 곳곳에 푸른 녹이 덮여 있다. 머리 위에는 큼직한 육계(肉髻)가 있으며 나발(螺髮)이 표시되어 있다. 얼굴은 네모나고 눈은 옆으로 길게 올라갔다. 코와 입은 작고, 볼에 두툼하게 살이 올라 있다. 머리에서 상체로 연결되는 목은 매우 짧은 편이어서 비만하고 약간 답답한 인상을 더해 준다.
법의는 양어깨를 덮는 통견(通肩)이다. 앞에서 넓게 U자형으로 옷깃이 늘어져 가슴이 노출된 곳에 내의와 띠 매듭이 보인다. 이 법의는 다시 아래쪽으로 늘어져 양다리 위에서 각각 U자형의 주름이 줄새김〔線刻〕으로 나타나 있다. 그 밑으로는 치마인 군(裙)의 자락이 발등까지 내려와 있다.
수인(手印)은 오른손은 시무외인(施無畏印), 왼손은 여원인(與願印)을 취하고 있다. 발에는 손상이 많다. 뒷면에는 머리와 위아래에 큰 구멍이 뚫려져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몸에 비하여 머리가 큰 편이며, 땅딸막하고 살찐 모습을 보여 준다. 상의의 표현에 유기적인 생동감과 양감은 많이 줄어들었다. 조각 표현에서는 평면적이고 굳어지는 경향이 엿보인다. 옷주름도 형식화되어 가고 있어 비교적 연대가 내려오는 9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은 모습의 불상의 형식은, 선산(지금의 구미) 출토의 금동여래입상(국보, 1976년 지정)이나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국보, 1962년 지정)과 같은 8세기 전기의 양식이 한국적으로 변모되고 토착화되어서 형성된, 신라시대 특유의 불상 형식의 하나로 생각된다. 비슷한 예로는 경주 벽도산 두대리 마애삼존불입상의 본존불과 잘 비교된다. 이 금동여래입상은 우리 나라의 금동상으로서는 비교적 큰 편에 속하며 신라 말기의 불상 양식을 잘 반영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