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앙(士仰), 호는 계미(溪湄), 또는 섬계자(剡溪子). 아버지는 김유근(金有根), 어머니는 진성이씨(眞城李氏) 이중윤(李重胤)의 딸. 국창(菊窓) 김필형(金弼衡)의 문인이다.
젊어서부터 문명(文名)을 펼쳤으나, 집안이 빈한하여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어버이를 지성으로 섬기는 것을 세상의 낙으로 여기면서, 정필규(鄭必奎)·김현규(金顯奎) 등 숱한 문인운사(文人韻士)들과 더불어 산수(山水)를 소요하며 시부(詩賦)를 화답(和答)하면서 년소(年少)한 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으로 일생의 업으로 삼았다.
특히, 김병수는 1838년(헌종 4) 향청(鄕廳)의 직임을 맡고 있을 때, 안동부사(安東府使) 이석(李㙽)에게 부내(府內)에 삼정을 바르게 시행하여 온갖 구실에 시달리고 있는 백성들의 부담을 감하여 달라는 글을 올려 이를 시행케 하는 등 목민관(牧民官)이 고을을 다스림에 무엇보다 백성이 가장 으뜸가는 근본이라는 민본설(民本說)을 역설하였다. 저서로는 『계미유고(溪湄遺稿)』 4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