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상산(商山). 자는 화길(和吉), 호는 서대(西臺). 할아버지는 김삼산(金三山)이고, 아버지는 전적(典籍) 김옹(金顒)이며, 어머니는 정구(鄭俅)의 딸이다.
1551년(명종 6) 별시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전적에 임명된 뒤, 태상주부·형조좌랑·감찰·춘추관·기주관(記注官)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1554년 청홍도사(淸洪都事)가 되었으며, 1556년 함흥부판관이 되었다. 이어 직강(直講)·호조정랑·교감(校勘) 등을 거쳐, 1561년 평택현령에 임명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갔다.
이곳에 작은 초막을 짓고 서대초당이라 이름하고 시를 읊으며 지냈다. 1567년 다시 호조정랑으로 관직에 나가 봉상시첨정(奉常寺僉正)·사예(司藝)를 거치고, 이듬해 초계군수·사성(司成) 등을 역임하고, 1571년(선조 4) 선공감정(繕工監正)이 되었다.
성품이 청렴하고 간소하여 관직에 있는 동안 권력 있는 자들에게 이부(移赴: 옮겨가 붙음)하지 않았다. 상주 효곡서원(孝谷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서대이문록(西臺異聞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