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심원(深源). 부장 김인보(金인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충서(金忠恕)이고, 아버지는 증지평 김응천(金應天)이며, 어머니는 안노(安노)의 딸이다. 대대로 보령에서 살았다.
어려서부터 정홍명(鄭弘溟)과 교유하고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배웠으며, 여러 제자들 가운데서도 특히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 김장생이 의병을 일으키자, 여러 고을의 창의관(倡義官)이 되어 많은 공을 쌓았다.
김장생의 천거로 사직서참봉이 되었으며, 그 뒤 사옹원봉사와 제용감직장을 거쳐 청산과 아산의 현감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