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권 5책. 국문 필사본(筆寫本). 필사 시기는 1권이 ‘셰갑ᄌᆞ(歲甲子) 하뉵월’, 2권이 ‘셰갑ᄌᆞ 뉴월 념오’, 3권이 ‘셰ᄌᆡ갑ᄌᆞ 칠월 샹슌’, 4권이 ‘셰긔ᄉᆞ(己巳) 구월 념오’, 5권이 ‘긔ᄉᆞ 구월 념팔’로 되어 있어, 1864년(고종 1)에서 1869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분량이 약 10만 자 정도가 되므로, 20세기 이전의 「춘향전」으로서는 가장 장편이다. 그래서 완판(完板) 84장본 「열녀춘향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보다 약 30년이 앞서며, 작품의 양도 두 배 이상이 된다. 그 때문에 이 작품을 「춘향전」을 대표하는 대본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이 작품은 파리의 동양어학교(東洋語學校)에 있으며, 이 계통에 속하는 이본이 일본 동경대학 도서관에 있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전통적 「춘향전」인 「별춘향전」 계통을 따르고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비롯한 부분 장면에서는 상당한 개별성을 보여 주고 있다.
서두(序頭)의 본문은 “천하 명산 오악지중에 형산(衡山)이 높고 높다. 당 시절의 젊은 중이 경문이 능통하므로 용궁의 봉명(奉命)하고 석교상 늦은 봄바람에 팔선녀(八仙女) 희롱한 죄로 환생인간하여……” 등으로 시작하며, 중편 가사에 해당하는 긴 허두(虛頭)를 지니고 있다. 이는 「구운몽(九雲夢)」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이로써 인간의 부귀공명이 결국 헛된 것이라는 도가적 분위기를 밑바탕으로 깔면서도, 춘향의 기이한 사랑과 의미 있는 삶이 이러한 무상감(無常感)을 극복할 수 있다는 쪽으로 본 이야기를 유도한다.
또 결말 부분에서는 어사(御史)가 된 도령이 변 부사(府使)를 봉고파출(封庫罷黜)해 감영(監營)에 보고하며, 춘향과 월매 · 향단을 먼저 한양으로 올려 보낸다. 그 뒤 도령은 한양으로 올라와 왕을 뵙고 춘향의 일을 고하였다. 이에 왕이 춘향에게 정렬부인(貞烈夫人)이라는 직첩(職牒)을 내리니, 도령은 부모에게 뜻을 물은 다음 춘향과 육례(六禮)를 갖춘 혼사를 치른다. 그 뒤 도령은 육경(六卿)의 벼슬을 하고 다섯 자녀를 두며 춘향과 화목한 평생을 보낸다.
이처럼 확장된 내용을 보여 주는 이 작품은 삽입가요를 장황(張皇)할 정도로 확대하여 싣고 있다. 즉, 춘향이 도령과 이별하고 빈방을 지키는 공방(空房) 사설(辭說) 장면에서는 “약수(弱水) 삼천리 못 건넌다 일렀으나 님 계신 데 약수로다. 애고애고 설운지고. 이 몸이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겼으니 삼생(三生)의 연분(緣分)이며 하늘 마출 일이로다. 나하나 소년이오 님하나 날 괴실 제 이 마음 이 사랑 견줄 데 전혀 없네…….” 등의 탄식으로 정철(鄭澈)의 가사(歌辭)인 「사미인곡(思美人曲)」의 전편(全篇)을 완전히 수용하고 있다.
또한 어사가 된 도령이 춘향을 광한루(廣寒樓)로 불러오는 대목에서도 행동에 대한 서술이 부연되고 있다. 즉 방자는 멀리서 그네를 뛰는 춘향을 보고 양반집 규수(閨秀)가 그네를 뛰러 왔나 보다고 하자, 도령은 바로 이르라고 하며 자신의 급한 마음을 노출한다. 참다못한 도령이 방자에게, 한양에 돌아가면 500냥 어치의 선물을 주겠다고 한 연후에야 비로소 방자는 고을(읍(邑))의 기생(妓生) 월매의 딸 춘향이라고 일러 준다. 이에 도령은 허튼 말로 방자와 형제를 맺자고 하며 자신을 방자 동생이라고 하지만, 방자가 응하지 않자 마침내 방자에게 형님이라 부르며 애걸(哀乞)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상황의 확장은 춘향과 도령이 이별하는 대목에서도 반복된다. 즉 춘향은 도령에게 자신을 데려가지 못한다면 차라리 자기를 죽이고 떠나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령이 자기를 버리지 않기로 약속한 사실을 문서로 써 준 불망기(不忘記)를 가지고 남원 원님에게 알리겠다고 한다. 그래도 자기 뜻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전라감영에 가서 자신의 사정을 하소연할 것이라고 한다. 그 재판에서도 지면 한양으로 올라가 한양의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알리고, 사람들로부터 돈을 한 푼씩 얻은 후 그 돈으로 종이를 사서, 종이에 춘향 자신의 사연을 적겠다고 한다. 그리고 임금이 능(陵)으로 행차할 때 그 종이를 보여 주며 하소연하겠다고 한다. 또 임금도 남성이라 도령의 편을 들면 자살한 뒤 원조(怨鳥)가 되어, 도령의 신방(新房) 앞에서 한스럽게 울 수도 있겠다고 한다. 하지만 춘향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 하며, 도령에게 한양에 가서 열심히 공부하여 과거에 합격한 뒤에 자신을 찾아 달라고 한다.
전반적인 서술 구조를 본다면, 이 작품은 창작 의식이 뚜렷한 작가에 의해 판소리 사설의 구성 원리를 이용한 장편 소설화가 이루어진 이본이다. 이 작가는 고급 문예인 한문학(漢文學)과 대중 문예인 국문문학(國文文學)과 구비문학(口碑文學)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민족문학(民族文學)의 다양한 소재를 최대한 삽입하였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로 인해, 광대들에 의해 불리는 전통 판소리 「춘향가」보다 더 많은 재담(才談)과 가요와 고사성어를 수용하면서도 사건의 전체적 흐름도 일관성이 있고 합리성이 있는 쪽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사실은 전반부에서는 춘향의 기생으로서의 면모가 강조되고, 후반부에서는 춘향의 열녀(烈女)로서의 면모가 강조되지만, 이는 도령을 만날 때는 춘향이 기생이고, 변 부사를 만날 때는 대비정속(代婢定屬)한 것으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춘향의 신분은 방자의 표현대로 고을의 기생 월매의 딸이다. 춘향은 스스로 자신을 기생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도령과 만나 몸을 허락하기 전에 불망기를 받아 뒷날 이 도령이 약속을 어기면 증거물로 삼으려 한다. 이러한 점은 「남원고사」가 초기의 「춘향전」이 지닌 속성인 불망기계 「춘향전」임을 뒷받침해 준다.
전반부에 기생으로서의 춘향의 행동이 뜨거운 육체적 사랑을 표현함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후반부에 규수로서의 춘향의 행동은 강인한 정신적 사랑을 표현함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전체적 서사 구조로 보면, 사랑의 속성이 두 가지이기 때문에 사랑의 주제를 더욱 의미 있게 표현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작품에서는 춘향의 성(姓)이 김씨(金氏)로 되어 있어, 다른 「춘향전」에서 춘향의 성이 성씨(成氏)나 서씨(徐氏)로 된 것과 대조를 이룬다. 또 인물 중에 방자 · 향단 · 군노(軍奴) · 패두(牌頭)와 같이 신분이 천한 인물과 지방 관아에서 직급이 낮은 관료들의 심리와 행동이 개성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당대에 주로 한양(서울)에서 유행하던 가요를 춘향의 서사에 적극 활용하여, 풍부한 양의 삽입가요를 통해 장형화를 이룬 일종의 ‘가요집형 소설’이다. 경판(京板) 35장본과 비교하면, 남원고사본은 골계(滑稽)와 음란함, 양반에 대한 비판 등이 강하게 나타난다. 경판 35장본은 남원고사본 계열의 이본을 바탕으로 삼아 보수적으로 축소 · 편집한 것으로 여겨진다. 완판 84장본과 비교하면, 남원고사본은 월매 · 방자 · 농부 등 하층 인물들이 양반인 이 도령에게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하층민 상호 간에는 긴장감을 조성하는 관계에 있다. 완판 84장본은 하층민 상호 간의 긴장감이 해소되고 양반과의 관계에서 긴장 관계를 형성하면서 더 건강한 모습을 보여 준다.
이 작품은 그 이후에 경판 35장본 「춘향전」을 비롯한 목판본(木版本)과 최남선(崔南善)의 「고본춘향전(古本春香傳)」 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완판 84장본 「열녀춘향수절가」보다 약 30년이 앞서며, 작품의 양도 2배 이상이 되어, 전통 시기의 「춘향전」 중에서 내용이 가장 풍부하다. 이런 이유로 이 작품을 「춘향전」을 대표하는 가장 훌륭하다는 이본으로 평가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