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전」은 대략 120여 종의 이본이 전하는데, 실제 이본의 의미를 갖는 작품은 70편 정도이다. 이들을 서지적 측면에서 나누어 볼 때, 한글 및 국한문 혼용으로 된 필사본, 한문 필사본, 목판본(木板本), 활자본(活字本), 그리고 창자를 알 수 있는 판소리 개작 및 전사본(轉寫本)이 있다. 이본은 판소리계 이본과 소설계 이본으로 양분되며 그 이본의 명칭 또한 다양하다.
명칭은 ‘토끼전’ 외에 별주부전(鼈主簿傳) · 토별가(兎鼈歌) · 수궁가(水宮歌) · 토공전(兎公傳) · 토별산수록(兎鼈山水錄) · 토생전(兎生傳) · 수궁전 · 퇴별전 · 토처사전(兎處士傳) · 토공사(兎公辭) · 별토전(鱉兎傳) · 토(兎)의 간(肝) · 불로초(不老草) · 수궁록(水宮錄) · 별토가(鼈兎歌)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고 있다.
이들 중 국한문 혼용의 필사본은 「별주부전」 · 「별토가」 · 「수궁가」 등, 한글 필사본은 「토끼전」 · 「토생전」 · 「토처사전」 등, 한문 필사본은 「토공사」 · 「별토전」 등이며, 목판본은 경판본 「토ᄉᆡᆼ젼」과 완판본 「퇴별가」가 있다.
활자본은 「별주부전」 · 「불로초」 · 「토의 간」 등인데, 이 중 1913년에 간행한 신구서림본 「별주부전」은 이해조(李海朝)가 명창 곽창기(郭昌基)와 심정순(沈正淳)의 구술을 받아 정리한 것이다.
판소리 창본은 신재효(申在孝) 교정의 「퇴별가」와 이선유(李善有)의 「수궁가」, 김연수(金演洙)의 「수궁가」 등 10명의 창본이 있는데, 신재효의 「퇴별가」가 완판본 「퇴별가」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본은 대체로 소설본과 판소리본으로 대별되며, ‘전(傳)’ 또는 ‘록(錄)’으로 된 것이 소설본, ‘가(歌)’로 된 것이 판소리본인 경우가 많다.
「토끼전」의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용왕이 병이 나자 도사가 나타나 육지에 있는 토끼의 간을 먹으면 낫는다고 한다. 용왕은 수궁의 대신을 모아 놓고 육지에 나갈 사자를 고르는데 서로 다투기만 할 뿐 결정을 하지 못한다. 이 때 별주부 자라가 나타나 자원하여 허락을 받는다. 토끼 화상을 가지고 육지에 이른 자라는 동물들의 모임에서 토끼를 만나 수궁에 가면 높은 벼슬을 준다고 유혹하면서 지상의 어려움을 말한다. 이에 속은 토끼는 자라를 따라 용궁에 이른다. 간을 내라는 용왕 앞에서 속은 것을 안 토끼는 꾀를 내어 간을 육지에 두고 왔다고 한다. 이에 용왕은 크게 토끼를 환대하면서 다시 육지에 가서 간을 가져오라고 한다. 자라와 함께 육지에 이른 토끼는 어떻게 간을 내놓고 다니느냐고 자라에게 욕을 하면서 숲 속으로 도망가 버린다. 어이없는 자라는 육지에서 죽거나 빈손으로 수궁으로 돌아간다.
「토끼전」은 인도 설화에 뿌리를 둔 불전 설화(佛典說話)를 근원 설화로 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전파되어 설화화와 소설화의 과정을 거친 것이다. 근원 설화에서 소설에 이르기까지는 대략 4단계를 거친 것으로 볼 수 있다.
첫째 단계는 인도의 본생담(本生譚, Jataka)으로 자타카 57 「원왕본생(猿王本生)」, 자타카 208 「악본생(鰐本生)」, 자타카 342 「원본생(猿本生)」의 세 가지가 있는데, 모두 『남전장경(南傳藏經)』 속에 들어 있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인도의 설화 문학서인 『판차탄트라(Panchatantra)』와 『가타사리트사가라(Gathasaritsagara)』, 불교 문헌인 『마하바스투(Mahavastu)』에도 나타나고 있다. 『판차탄트라』는 서기전 200∼300년 경에 성립된 것이고, 『가타사리트사가라』와 『마하바스투』는 대략 그 이후에 성립된 문헌으로 추정되고 있다.
둘째 단계는 이들 인도의 설화가 불경에 흡수되어 불교의 전파와 함께 중국에 들어와, 한자로 번역되어 한역 경전으로 나타난 단계이다. 「토끼전」의 근원 설화를 수록하고 있는 불경은 3종으로 『육도집경(六度集經)』, 『생경(生經)』의 제1권 『불설별미후경(佛說鼈獼猴經)』, 그리고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이다. 이들이 중국에서 번역된 것은 대략 3세기에서 5세기에 이르는 기간으로, 이것이 다시 중국의 불교 문헌에 재편입되었다. 수록 문헌은 『경률이상(經律異相)』 · 『법원주림(法苑珠林)』 등이다.
셋째 단계는 우리나라에 들어와 문헌 설화로 정착되거나 구비 설화로 구전되는 단계인데,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金庾信列傳)에 나타나는 구토 설화(龜兎說話)가 문헌 설화의 예이고, 구전 설화는 불전 설화의 민간 유출로 가능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넷째 단계는 오랫동안 구전되던 설화가 조선시대 후기에 이르러 판소리화하여 그 대본으로 정립되거나, 또는 설화에서 곧바로 소설화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단계이다. 그 기간은 대체로 17, 18세기경으로 추측될 뿐 정확한 연대나 경위를 확증하기는 어렵다.
「토끼전」은 판소리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기에 그 성립의 시기나 계기에 대한 추론은 판소리 자체의 역사, 특히 「수궁가」의 형성과 전개에서 찾아야 한다. 이처럼 4단계를 거쳐 성립되는 동안 이야기의 내용도 많은 변화를 거치게 되나 원형으로서의 설화의 골격은 변함이 없다.
첫째 단계에서는 대체로 단순히 교훈적인 인도의 우화적 설화로 존재한다. 그러다가 불경에 삽입되면서 종교적 의미를 띠게 된다. 이 단계에서 등장하는 동물은 원숭이와 악어로 되어 있고, 수중의 악어 아내가 원숭이의 간을 먹고 싶어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둘째 단계인 한역 경전에서 동물은 자라와 원숭이, 또는 용과 원숭이로 변한다. 그러나 악어는 악인 제바달다(提婆達多)로서, 악어가 원숭이 간을 탐내는 것처럼 악인인 제바달다가 석가를 해치려 한다는 의미로 되어 있다.
셋째 단계에서 구토 설화는 다분히 한국화되어 풍자 소설로 이루어진다.
「토끼전」에는 작자군(作者群)의 서민 의식을 바탕으로 날카로운 풍자와 익살스러운 해학이 잘 나타나 있고, 이것이 주제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풍자성은 작자군인 서민 계층이 당시 피지배층의 지배층에 대한 저항 의식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형성 시기로 추정되는 17, 18세기는 지배 관료 계층의 부패와 무능으로 서민들의 사회적 불만이 커가던 때였다. 그러나 이러한 불만은 지적 능력의 결여와 사회적 신분의 제약으로 표출할 방도가 없었고, 다만 민란(民亂)이라는 폭력적 수단과 민속극 · 판소리 · 민요 등 서민 예술을 통한 간접적 배설의 길만이 있었다. 우화적 이야기로서의 「토끼전」은 그러한 사회적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나타나는 세계는 용왕을 정점으로 한 자라 및 수궁 대신들의 용궁 세계와, 토끼를 중심으로 한 여러 짐승들의 육지 세계로 나뉜다. 전자는 정치 지배 관료층의 세계를, 후자는 서민, 피지배 농민층의 세계를 각각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주색에 빠져 병이 들고 어리석게도 토끼에게 속아 넘어가는 용왕과 어전에서 싸움만 하고 있는 수궁 대신들은 당시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 사회의 인물들을 투영한 것이다.
이와 반대로, 토끼는 서민의 입장을 취한다. 수궁에서 호의호식(好衣好食)과 높은 벼슬을 할 수 있다는 자라의 말에 속아 죽을 지경에 이르지만, 끝내 용왕을 속이고 수궁의 충신 자라를 우롱하면서 최후의 승리를 얻는 작품의 귀결은 토끼가 작자군을 대변하는 존재임을 잘 보여 준다. 여기서 이 작품의 주제가 서민 의식에 바탕을 둔 발랄한 사회 풍자에 있음이 잘 드러나고 있다. 한편, 곳곳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서민적 해학도 주제적 측면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이본에 따라 자라의 충성을 주제적 측면으로 내세우는 경우도 있지만, 충성이 이 작품의 본래적이고 일반적인 주제는 아니다. 외래의 짤막한 동물 우화를 장편의 의인체 풍자 소설로 발전시킨 데서 조선 후기 서민들의 예술적 창작력이 높이 평가된다. 결말도 이본에 따라 다양한데, 결말의 다양함은 「토끼전」이 제기한 문제에 대한 결론을 합의하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또한 등장하는 동물들은 각기 조선 후기 사회의 계급을 상징한다. 토끼의 간을 찾는 용왕은 백성의 생명을 착취하는 부패한 봉건 군주를, 별주부는 망해가는 권력에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는 중간 계층을, 토끼는 그들에게 수탈당하는 민중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단순한 동물 소설이 아니라 당시의 비판적 서민 의식을 우화적 수법을 통하여 드러냈다는 점에서 고소설사상(古小說史上)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이 작품은 소설 · 판소리 · 전래동화 등으로 전해지고, 지금도 마당극이나 창무극(唱舞劇)으로 계속 공연되고 있는 우리 민족의 살아 있는 고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