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현대문학
개념
사람의 마음을 표정 변화나 소리로 나타내는 표현방식.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웃음은 사람의 마음을 표정 변화나 소리로 나타내는 표현방식이다. 동물 중에서 안면근육이 특별히 발달한 사람에게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다채로운 웃음은 어느 민족에게나 비슷하게 나타나지만, 그 내면에 담긴 심리적 특징은 서로 다르다. 웃음을 대상으로 하거나 표현의 소재로 삼아 탄생하는 문학, 미술 등 이차적인 문화 창조물에서도 많은 차이를 보여 웃음은 민족문화 연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웃음과 관련한 말이 굉장히 다채로운 것이 우리의 특징이며, 토우·기와 막새·불상·탈·장승 등에서는 우리 고유의 웃음을 찾아볼 수 있다.

정의
사람의 마음을 표정 변화나 소리로 나타내는 표현방식.
웃음이란

마음의 긴장이 갑자기 무너지고 즐거움 · 여유 · 대상을 비판할 수 있는 심리적 거리가 생길 때 웃음이 나온다. 예사 웃음은 얼굴의 표정 변화와 목구멍을 거듭 울리는 소리를 아울러 갖추고 있다. 표정 변화만 있고 소리는 없는 웃음, 소리만 있고 표정 변화는 없는 웃음은 웃음의 특수 형태이다. 웃는 사람이 남자인가 여자인가, 나이가 얼마나 되는가, 또는 왜 웃는가에 따라서 웃음이 각기 다르다. 표정 변화는 주로 입 언저리에서 나타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눈으로 웃기도 한다. 웃음소리를 ‘하하’ · ‘해해’ · ‘허허’ · ‘호호’……등으로 적는데,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많은 동물 가운데 사람만 웃는다. 일반 동물도 노여움 · 슬픔 · 기쁨 · 즐거움을 나타낼 줄 안다. 그러나 기쁨이나 즐거움을 웃음으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소가 웃는다고 하지만, 사람에게 그렇게 보일 따름이다. 고사를 지낼 때 웃는 모습을 하고 있는 돼지 머리를 비싸게 사다 쓰는 기묘한 풍속에서 동물의 표정에 대한 사람 나름대로의 판단이 더 잘 드러난다. 동물은 안면 근육이 제대로 웃을 수 있게 발달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데 웃음이 필요하지도 않다. 웃음은 생리적이라기보다 심리적인 반응이고, 문화적인 의미를 가지므로 더욱 중요시된다. 복잡한 생각을 한편으로는 말로, 또 한편으로는 웃음으로 나타내는 능력은 표리 관계에 있으며, 사람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게 하는 징표이다.

생리적인 웃음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서나 그리 다를 바 없다. 지능이 성숙되고 지각반응이 세련된 사람의 웃음은 어느 민족의 경우나 비슷하게 다채롭다. 그러면서 심리적인 특징에 있어서는 서로 다를 수 있다. 웃음을 대상으로 하거나 표현의 소재로 삼아 이룩한 문화적인 창조물은 이차적인 웃음이고, 문화적인 웃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웃음은 민족에 따라서 커다란 차이를 나타낼 수 있어서 민족문화 연구의 불가결한 대상이 된다. 웃음에 관한 일반론이 많이 나와 있으나, 인류 문화에 있어서의 웃음을 총괄하여 논한 것은 아니며, 아직 그럴 단계에 이르지 못하였다. 우리는 웃음에 관한 말을 어떻게 갖추고, 웃음을 두고서 어떤 사상을 마련하고, 웃음을 예술 창작에서 얼마나 활용하여왔는가를 민족문화사의 관점에서 고찰하는 데 힘쓸 필요가 있다.

웃음에 관한 말

웃음은 명사로 개념화되어 있지 않고, 동사 ‘웃다’의 명사형이다. ‘웃음’으로 정상적인 웃음을 통칭한다. 거기에다 접두어를 얹어서 만든 말은 웃음의 특수 형태를 분별하는 데 쓴다. 눈웃음은 눈으로만 웃는 웃음이다. 코웃음은 코로 소리를 내는 웃음이다. 너털웃음은 소리를 지나치게 내는 웃음이다. 헛웃음은 표정변화는 없이 소리만 내는 웃음이다. 비웃음은 비꼬는 웃음이다. 그 가운데 비웃음만 ‘비웃다’라는 동사의 명사형이다.

‘웃다’에는 사동형 ‘웃기다’가 있다. ‘웃기다’의 주어는 다소 불만스러운 인물이나 행위이다. 자동사인 ‘웃다’로는 그런 대상과의 관계를 나타내지 못하므로 ‘웃기다’가 따로 필요하다. 요사이에는 ‘웃기다’의 활용형 ‘웃기네’와 ‘웃기지 마’가 상대방에 대한 불만을 나타낼 때 널리 쓰인다. ‘비웃다’는 타동사여서 목적어를 가진다. 그 목적어 또한 불만스러운 인물이나 행위이되, 불만의 정도가 ‘웃기다’의 주어보다 더 크다. 웃음을 나타내는 형용사는 ‘우습다’이다. ‘우습다’는 ‘웃다’처럼 정상적인 웃음에 두루 쓰인다. 그런데 ‘우습다’의 명사형인 ‘우스개’는 뜻이 ‘웃음’과 중복되지 않고 훨씬 좁다.

웃음을 일으키는 화제나 이야기가 ‘우스개’이다. 형용사에 ‘우스꽝스럽다’도 있어 의미 분화의 한 몫을 맡는다. 우습다고 여겨지는 대상이 불만스러워 시비를 가리고자 하는 생각까지 일으키면 ‘우스꽝스럽다’고 한다. ‘우스꽝스럽다’는 명사형이 없고, 관형사형 ‘우스꽝스러운’으로 흔히 쓰인다. ‘웃다’와 ‘우습다’로는 정상적이고 부드러운 웃음을 일컫는다면, ‘웃기다’ · ‘비웃다’ · ‘우스꽝스럽다’로는 불만과 반감을 나타내는 사나운 웃음을 지적한다. 웃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복잡하여 여러 말이 필요하다.

웃음을 뜻하는 한자 ‘소(笑)’ 앞에 다른 글자가 붙어 이루어진 말은 더 많다. 웃음의 소리가 없으면 ‘미소(微笑)’이고, 떠들썩하면 ‘홍소(哄笑)’이고, 크기만 하면 ‘대소(大笑)’이고, 크고 갑작스러우면 ‘폭소(爆笑)’이다. 표정 변화와 소리가 아울러 크고 유쾌하면 ‘파안대소(破顔大笑)’라 한다. 불만을 나타내는 사나운 웃음도 ‘조소(嘲笑)’ · ‘비소(誹笑)’ · ‘냉소(冷笑)’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런 한자어는 모두 다 명사이자 동사이기만 하고, 품사전성과 어미활용에 따르는 의미 분화는 갖추지 않고 있다. 개념 분별에 기여할 따름이며, 묘미 있는 어감은 수반하지 않는다. 널리 쓰이는 말은 ‘미소를 띠다’, ‘폭소를 터뜨리다’, ‘냉소를 머금다’에서 보듯이, 순수한 우리말 동사를 적절하게 바꾸어 그런 결함을 메운다.

‘웃음’이나 ‘소’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고 웃음의 어떤 갈래나 쓰임새를 일컫는 용어도 여럿 있다. ‘익살’은 웃기려고 하는 짓인데, 점잖지 못하다고 여겨 ‘익살을 떤다’고 한다. 웃기는 말만 따로 가리키는 것이 ‘농담(弄談)’이고 ‘재담(才談)’이다. 농담은 우스개와 거의 같되, 듣는 이를 희롱하자는 의도가 들어 있는 점이 약간 다르다. 재담은 듣는 이의 호응을 의식하며 재주를 부리는 우스개이다. 이런 것들을 총칭하는 한자어에 ‘골계(滑稽)’가 있다. 오랜 내력을 가진 이 말이 오늘날에 와서는 ‘해학(諧謔)’과 ‘풍자(諷刺)’를 합친 개념으로 설명되고 있다. 해학은 스스로 웃자는 부드러운 웃음이라면, 풍자는 상대방을 공격하자는 사나운 웃음이다.

웃음을 일으키는 연극은 소극(笑劇)과 희극(喜劇)으로 나누어진다. 소극은 웃고 말게 하는 연극이라면, 희극은 뜻 깊은 웃음을 제공하는 연극이다. 웃음에 관한 속담이나 격언도 웃음의 양상을 알아보는 데 도움이 된다. ‘웃는 낯에 침 뱉으랴.’는 웃음이 반감을 누그러뜨리는 구실을 한다는 것을 지적한 속담이다. 그런데 ‘우습게 본 풀에 눈 찔린다.’고 하면 진지하게 살펴야 할 것을 우습다고 여기면 실수를 한다는 뜻이다. 이때에는 ‘우습게 여기다’가 실상 이하로 가볍게 본다는 말이다. 웃음을 좋게만 여기는 생각이 더욱 두드러져 “웃는 집에 복이 온다.”고 하고,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라고 써서 붙인다. 웃으면 좋고 화를 내면 나쁘다는 처세 교훈을 ‘일소일소 일로일로(一笑一少一怒一老)’로 나타내기도 한다. 이 격언은 소리는 같고 뜻은 다른 말을 거듭 써서 재미가 있으나, 웃음의 효용을 단순화시킨 흠이 있다.

상층문화와 관련된 웃음

웃음을 나타내는 이른 시기의 조형물은 토우(土偶)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무덤에 넣는 부장품으로 쓰자고 사람의 모습을 축소하여 토우를 만들면서, 흥미롭게 과장한 것들이 있어 웃음을 자아낸다. 제작자는 웃기려고 하지 않았겠지만, 치졸하고 천진스러운 솜씨로 빚어놓은 모습에서 고대인이 웃고 살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제작 의도 자체가 웃음을 나타내고자 하였던 조형물은 그보다 뒤에 이루어졌으리라고 생각된다. 통일신라 때의 얼굴모양 수막새[人面瓦]라고 하는, 기와막새에 새겨져 있는 사람 얼굴은 그런 예라고 할 수 있다. 막새 장인이 도깨비기와[鬼面瓦]같은 것을 만들던 규범에서 벗어나, 흥미로운 표현을 시도하다가 맑고 따뜻한 웃음을 남겼을 듯 하다.

웃음을 머금고 있는 모습의 본격적인 조각 작품은 삼국시대 불상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고구려 불상인 연가칠년명금동삼존불(延嘉七年銘金銅三尊佛)은 서투르고 소박한 미소를 짓고 있다. 백제의 불상 중에는 서산마애삼존불瑞山磨崖三尊佛)이 사심 없이 활짝 웃는 모습을 하고 있어, 백제 사람들의 맑고 다정한 마음씨를 알려주는 것 같다. 신라의 경우에는 남아 있는 불상이 많아 웃음의 모습이 다채롭다. 석굴암본존불(石窟庵本尊佛)은 원만하고 은근한 미소로 깨달은 경지를 나타내 우러러보아야 한다면, 삼화령미륵삼존불(三花嶺彌勒三尊佛)은 아기와 같은 표정의 천진스러운 웃음을 그득히 보이고 있어 친근하게 느껴진다. 미륵반가상(彌勒半跏像)의 웃음은 이 세상의 모든 고뇌를 넘어서려고 하면서도 따르지 못하는 중생을 생각하는 미묘한 표정을 아주 잘 나타내고 있다.

불상에서 볼 수 있는 웃음은 당시 불교관의 표현이다. 삼국 중에서 특히 신라인은 불교의 어느 종파를 내세워 교리를 분별하기보다는 서로 대립되어 있는 주장을 하나로 아우르는 데 힘썼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 융합 운동을 주도한 원효(元曉)는 교리 때문에 생긴 집착과 편견을 깨야 진실에 이른다 하고, 광대에게서 배운 바가지춤을 추면서 미천한 무리와 어울렸다. 원효와 우스개를 주고받은 벼를 베는 여자, 개짐(지금의 생리대)을 빠는 여자가 보살이었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전한다.

미천한 처지에서 비속하게 살아가면서 귀족적 편견을 깨는 데 있어서 원효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는 고승도 여럿 있다. 부처나 보살이 남루한 차림으로 나타나 지위와 학식을 자랑하는 자들을 우롱하였다는 이야기가 많은 것도 이와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느 승려가 욕심 때문에 병이 나자, 보살이 기괴한 탈을 여럿 가지고 나타나 턱이 빠지도록 우스운 춤을 추어 병이 낫게 한 일도 있다 한다. 고려시대 승려 일연(一然)은 자기가 깊이 공감하는 바 있어, 위에서 든 것과 같은 설화를 모아 『삼국유사』를 엮었다. 그런데 고려 이후의 불상은 신라 때의 웃음을 생동감 있게 잇지 못하고 격식화되는 변화를 겪었다.

그 대신에 지눌(知訥)이 창도하여 일연의 시대에 이르러서 크게 성행한 선종(禪宗)은 번다하게 개념화되어 있는 교리를 넘어서서, 논리화될 수 없는 깨달음을 선시(禪詩)로 나타냈다. 선시 속의 파격적인 역설은 모든 경직된 생각을 파괴하고 아무 대안도 제시하지 않으며, 웃음마저 거부한 웃음을 구현한다. 그리하여 불교에서 웃음이 다시금 중요한 구실을 하게 되었으나, 삼국시대 불상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은 친근한 느낌을 전하지는 않았다.

불교와 마찬가지로 도교에서도 신선의 모습을 웃음이 나오게 나타낸다. 신선은 부처처럼 세속의 집착을 벗어나 자유롭다 하며, 그런 모습을 상식에 어긋나는 충격을 주게 그린다. 백발노인이 천진스러운 아이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장난스러운 거동을 보인다. 밥을 뿜어 벌이 되게 하는 따위의 도술을 부려 개구쟁이 같은 충동을 표현한다. 「전우치전(田禹治傳)」에서 보이는 도술도 이런 성격을 지니되, 사회적인 억압과 허위를 타파하는 의미를 지닌다. 전우치는 천상 선관(仙官)으로 가장하여 임금으로 하여금 천상 궁전을 중수하는 데 쓸 황금 들보를 바치라고 하고서, 그것을 팔아 빈민을 살렸다 한다. 오늘날까지 전국에 파다하게 전하는 이인(異人) 이야기에 바보처럼 보이는 이인이 행세하는 인물을 우롱하는 것이 적지 않다. 도교와 관련된 웃음은 조형예술보다 서사적인 전승에서 더욱 흥미로운 변형을 보였다.

유교에서는 마음을 진지하게 가져야 성현의 도리를 실행할 수 있다고 하면서 웃음의 의의를 적극적으로 평가하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을 사단칠정(四端七情)으로 나누어 논하고서, 기쁨과 즐거움은 악하기 쉬운 칠정에 속한다고 하였다. 군자는 모름지기 자세를 엄정하게 하고 우스개 따위는 멀리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임금이 먼저 그렇게 하는 데 모범을 보여야 천하가 다스려진다고 하였다.

그러나 유교 이념이 강조되던 조선 초기의 임금들조차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낭비의 표본이라는 가지가지 놀이를 자주 벌이게 하고, 광대를 불러 소학지희(笑謔之戱)를 즐기고는 하였다. 소학지희는 이름 그대로 웃음과 해학의 놀이이며, 당시의 용어로 시사지사(時事之事)를 다룬 것이 흔하다. 벼슬아치가 횡포를 부려 백성의 생업을 망치고, 수탈을 지나치게 하고, 못난 친척을 등용하고, 나라의 진상품을 가로챈다는 것을 임금 앞에서 연극으로 보였다. 그러다가 비위를 거슬려 처벌당하기도 하였지만, 임금이 보고서 웃고 잘못을 바로잡게 하였다는 기록이 더 많다.

유교 이념이 지배적인 위치를 굳히자 이처럼 문화가 이중 구조를 지녀, 경직된 표면과는 다른 이완된 이면이 형성되었다. 군자의 도리를 실행한다는 도학자는 글 한 줄도 허투로 쓰지 않아야 한다고 다그쳤으나, 중앙 정계에서 이미 세력을 굳힌 문인들은 그런 주장에 구애되지 않고 이완이 또한 필요하다고 하였다.

서거정(徐居正)『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 이하의 골계전, 성현(成俔)『용재총화(慵齋叢話)』 등의 풍자적으로 가볍게 쓴 글에다 웃음을 자아내는 이야기, 특히 음담패설을 서슴없이 모아놓았다. 강희맹(姜希孟)은 자기가 엮은 골계전이 턱이 빠질 정도로 우스운 시골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하여 『촌담해이(村談解頤)』라 일컫고, 서문에서 내용이 좋지 못하고 말이 거칠다고 나무라는 우스개가 풍속을 경계하는 소중한 구실을 한다고 짐짓 변명하였다.

이런 골계전류는 조선 후기까지 이어져 왔으며, 나중에 『고금소총(古今笑叢)』이라는 이름으로 집성되었다. 거기 실려 있는 음담패설은 오늘날에는 오히려 검열 때문에 발표될 수 없는 것들이다. 인륜을 엄하게 하여야 기강이 선다고 하는 사대부가 뒤로 돌아앉아서는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과는 다른 짓을 하였던 내막을 보여주어 흥미롭다. 또한 구전설화의 묘미를 손상시키지 않고 전하는 자료라서 소중하다.

이러한 글에는 남녀관계에 서투른 바보가 으레 등장하는데, 바보는 대부분 하층민이 아니고 상층의 사대부이다. 하인을 속이려다가 도리어 속고 마는 유형이 적지 않다. 어느 양반이 첩을 친정에 보내면서 옥문(玉門)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바보 하인을 골라 동행하게 하였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따라가 보니, 둘이 난잡한 짓을 하고 있었다. 무슨 짓이냐고 호령을 하자, 하인이 말하기를 마님이 물을 건너다 넘어져 가랑이 사이가 찢어졌으므로 치료를 하고 있다고 하였다. 양반은 본래 있던 구멍이니 염려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런 것이 좋은 예이다.

실학자들은 지배 이념을 시대 상황에 맞게 수정하자고 주장하면서 하층민의 움직임에 깊은 관심을 가져, 웃음에 대한 사상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익(李瀷)『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웃음에 관한 논설을 여러 차례 펴고, 웃음의 의의는 인정하되, 지나치게 웃는 것은 경계하여 마땅하다고 하였다. 「소보(笑譜)」라는 글에서는 “마음이 소리를 주관하므로, 마음을 잃으면 웃게 된다.”고 전제하고, “기뻐서 웃는 것은 성인이나 바보나 마찬가지이지만, 그만둘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웃으면 마음을 잃었다 하겠다.”고 하였다. 다른 글에서는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광대를 불러 유희(儒戱)를 벌이는 것이 추태라고 나무랐다. 유희는 선비의 거동을 우스꽝스럽게 흉내내는 놀이이다. 유희보다 더 심한 가지가지 놀이에서 사대부를 풍자하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서 사대부는 스스로 그런 데 휩쓸리지 않아야 한다고 경계하였다고 생각된다.

박지원(朴趾源)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의 창작 태도를 말하면서 신세가 불우하게 되어 ‘이문위희(以文爲戱)’하였다고 하였는데, 이 말은 여러 가지 뜻을 함축하고 있다. 문자 그대로 새기면 글로써 놀이 또는 장난거리를 삼았다는 것이다. 그런 태도는 글로써 교화를 베풀어야 한다는 정통적인 문학관에 어긋난다. 자기자신을 광대처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고 이어서 한 말과 합쳐 생각하면, 민속예술에 보이는 익살을 받아들여 창작 원리로 삼았다고 하겠다. 그는 웃음을 풍자적으로 가볍게 쓴 글의 범위 안에 가두어 두지 않고 본격적인 작품 속으로 끌어들여 사회를 풍자하는 방법을 다양하게 개발하였다.

「양반전(兩班傳)」에서는 가난한 양반이 이웃 부자에게 양반의 지위를 매매하는데 군수가 문서를 작성하여 공인한다는 기발한 사건을 설정하고, 양반의 허식과 횡포를 시비거리로 삼았다. 『열하일기(熱河日記)』에서 대수롭지 않은 듯이 삽입한 일화 가운데 지배층의 허위 의식을 풍자한 것이 적지 않다. 호랑이를 들어서 유학자의 허식을 우스꽝스럽게 폭로한 「호질(虎叱)」이 좋은 본보기이다. 그 당시 다른 작가의 한문소설이나 한시에도 풍자적인 작품이 많았다.

기층문화에서의 웃음

무속을 비롯한 민간신앙은 무섭고 위엄 있는 신령을 내세워 재앙을 물리치려 하는데, 그렇게 보이라고 만들어놓은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제주도의 돌하루방이나 다른 지방의 벅수 · 장승 등은 무서운 얼굴이 아닌 무섭게 보이려는 얼굴을 하고 있다. 잔뜩 성낸 눈이나 입이 균형을 잃고 있어 마음씨 너그러운 이웃 할아버지가 일부러 겁을 주려는 것처럼 보인다. 무신도(巫神圖)는 불교의 탱화(幀畫)를 본떠서 그렸는데, 수법이 치졸하고 정신적 깊이가 모자라 신의 모습을 비속하게 만들었다. 이런 것들은 모두 보는 이를 웃기자고 만들고 그리지는 않았지만, 일반 민중의 일상 생활에서 저절로 생기는 웃음을 자연스럽게 나타내는 구실을 한다.

민화(民畫)도 이와 비슷하다. 민화는 십장생(十長生) 같은 도교적인 상징물, 책거리 따위의 유교적인 취향의 장식물을 등장시켜 부귀 · 길상 등을 기원하는데, 그린 수법이 치졸하여 흥미롭다. 제대로 된 회화작품과 견주어보면 결점투성이이지만, 그런데 개의하지 않고 순진하고 낙천적인 태도로 그린 자취가 친근하게 느껴지고 웃음을 자아낸다. 실제와는 다르게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태고 마구 일그러뜨리고, 엉뚱하게 가져다 붙여 어린아이 같은 장난을 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호랑이를 즐겨 그리면서 모습을 재미있게 단순화하고, 담배를 피우게 하고, 까치와 수작을 나누게 한다. 그런 수법이 도자기그림에 전용되어 용의 모습을 만화 같은 수법으로 일그러뜨린 것도 있다.

민화와 함께 조선 후기에 성행한 풍속화는 세상의 움직임을 실제로 볼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그렸다. 엉뚱한 과장이나 변형은 하지 않았으나, 사회적 규범의 이면에 가려져 있던 진실을 드러내는 점이 흥미롭다. 김홍도(金弘道)는 부지런히 타작을 하는 일꾼들 옆에서 장죽을 물고 비스듬히 누운 양반의 거동을 밉살스럽게 그렸다. 신윤복(申潤福)의 풍속화에는 남녀관계를 다룬 것이 흔하며, 묘한 장면을 감칠맛 있게 잡아 미소짓게 한다. 동승(童僧) 둘이서 냇가에서 몸을 씻는 아낙네들을 훔쳐보는 것이 그 중에서 걸작이다. 이런 그림은 상하 · 남녀의 분별을 강조하는 윤리를 풍자하는 의미를 지닌다. 그 점에서 같은 시대에 나온 여러 갈래의 문학작품과 상통한다.

구전설화에서의 웃음은 더욱 풍성하다. 『삼국유사』의 불교설화, 조선 초기 골계전의 음담패설, 그리고 박지원 시대의 소설이 모두 구전되는 설화에 근거를 두고 형성되었다. 민화나 풍속화도 알만한 이야기를 지닐 때 흥미가 가중된다. 그 모든 것들의 원천인 구전설화의 소화(笑話)는 몇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주인공이 특이하여 바보짓을 하고, 건망증이 심하고, 구두쇠 노릇을 하는 것들이 첫 번째로 들어야 할 단순한 부류이다. 그런데 그런 실수를 하는 위인이 지체가 높고, 평소에 위엄을 뽐냈다는 내용이 추가되면 웃음의 의미가 단순하지 않아 풍자가 성립된다. 이것이 두 번째의 부류이다. 그런 위인들과 맞서는 주인공이 있어 의도적인 책략을 부리는 일화가 연속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풍자와 주인공을 감싸는 해학을 아울러 알아차리게 한다. 이런 것들이 세 번째 부류를 이룬다.

첫 번째 부류의 소화는 어느 때든지 있었으리라고 생각된다. 두 번째 부류도 조선 전기 골계전에 다수 올라 있으나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뚜렷한 이름이 없는 꾀보 하인이 상전을 욕보였다고 하는 정도에 머무르지 않고, 사방을 돌아다니며 책략을 일삼는 주인공을 내세워 가지가지 위엄을 우롱하는 세 번째 부류는 조선 후기에 널리 퍼졌던 것 같다. 그런 인물이 전국 도처에 실제로 있어서 이야기가 생겨났다고 하며 하는 짓이 서로 비슷하다. 평양의 김선달, 서울의 정수동, 경주의 정만서가 가장 널리 알려졌다.

이 중의 정수동은 위항시인(委巷詩人 : 조선 후기 위항문학을 이룬 사람들. 중인, 아전, 서얼 출신들이다) 정지윤(鄭芝潤)인데, 김선달이나 정만서와 다를 바 없는 건달로 이야기된다. 그밖에 다른 고장에서도 비슷한 인물의 일화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영덕의 방학중은 김선달의 돈을 떼먹을 만큼 수단이 좋았다고 하면서, 방학중이 김선달처럼 알려지지 않은 데 대하여 그 고장 사람들이 분개하고 있다. 대동강을 팔아먹고, 닭을 봉인 줄 알고 샀다면서 닭장수를 골탕먹이고 하는 것은 주인공이 김선달이어야 하는 독특한 유형이다. 서울 가는 길에 아무 상관없는 여자를 낭패를 보인 대가로 동행들에게서 잘 얻어먹고, 똥을 새라고 속여 서울 장안의 수라꾼을 욕보였다든지 하는 것은 다른 인물들도 흔히 하는 짓이다.

별 볼일 없이 돌아다니는 건달이 짓궂기만 하여 도리에 어긋난 책략을 부려 아무에게든 닥치는 대로 피해를 끼치는데도 밉살스럽지는 않다. 듣는 이들도 그런 장난을 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껴 생각할수록 재미있고 우습다 하면서 더욱 기발한 유형을 찾는다. 그런 주인공에게 우롱되는 상대방이 반감을 일으키는 인물이면 흥미가 가중된다. 양반을 골탕먹인 이야기는 흔하지 않지만, 약점을 잡는 술책이 교묘하여 반격의 여지가 없도록 하는 솜씨가 놀랍다.

민요는 설화와 달라서 애조를 띤 것이 많다. 신세타령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나 시집살이 노래는 가락과 사설이 아프고 쓰려 웃음과는 거리가 먼 듯 하다. 그렇더라도 주된 정서가 한(恨)이라고 보는 것은 적합한 해석이 아니다. 시집살이 노래를 부를 때에 원망의 대상을 ‘시금시금 시어마님’, ‘흥글흥글 맞동서’, ‘콩꼬타리 시아재비’라고 일컬어 슬픔을 웃음으로 차단하고, 자기의 처지에 대하여서 비판적인 거리를 가진다.

이별의 노래인 「아리랑」에서, 떠나는 임이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고 한 데서도 그와 같은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아리랑」의 가락은 애조를 띠지만, 사설은 반드시 그렇지 않아 세태 풍자의 반어와 역설을 다채롭게 갖추었다. 놀이를 하면서 부르는 민요는 즐겁다. 어떤 대상을 놀리면서 부르는 동요는 웃음이 나게 한다. 이가 빠졌다든지 하는 아이를 놀리는 동요를 부를 때에는 그 아이가 애가 달수록 주위에서 더 웃는다.

동물을 놀리는 노래는 그 동물로 은유되는 사람을 헐뜯는 의미를 지닐 수 있다. 두꺼비등이 험한 것을 보고 전라 감사로 있을 때에 기생첩을 많이 두고 창병이 올라 그렇다고 하는 것은 동요의 원리를 응용한 풍자시이다. 웃기는 노래는 대체로 장단이 빠르다. 빠른 장단을 더 빠르게 하면서 이말 저말 잽싸게 가져다 붙이는 이른바 엮음의 수법으로 기발한 재담을 늘어놓으면 폭소가 터진다. 누구를 놀려서 풍자하는 노래를 엮음의 수법으로 길게 늘인 것을 휘몰이잡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맹꽁이타령」에서는, 서울 장안 곳곳에서 맹꽁이들이 어울리지 않게 뽐내고, 우열을 다투고, 별별 술책을 다 쓰고, 헛소리를 한다면서 세태를 풍자하였다.

사설시조 또한 그 비슷한 수법으로 세태를 풍자한다. 평시조에서도 달관의 웃음, 환멸의 웃음 같은 것을 볼 수 있었지만, 사설시조의 웃음은 그처럼 단순하지 않다. 순진한 척하는 자아가 어처구니없는 꼴을 본 충격을 전한다면서 가려 있던 진실을 드러낸다. 두꺼비가 파리를 잡아먹으려다가 발랑 나자빠진 것을 비웃으며 권력의 생리가 그렇다는 주장을 뒤에다 감춘다. 이 · 벼룩 · 빈대 따위의 물것 등쌀에 살지 못하겠다고 하며 물것의 종류를 있는 대로 들어 나무라는 작품도 수탈자에 대한 반감을 암시한다. 체면을 돌보지 않고 음란한 성행위를 하는 장면을 기발한 비유를 갖추어 묘사하고, 남편을 닥치는 대로 얻은 아낙네가 하는 수작을 거침없이 늘어놓기도 한다.

판소리 내의 웃음은 민요와 사설시조 양쪽의 웃음을 합쳐놓은 것 같다. 애조를 띤 가락과 사설로 견디기 어려운 시련을 다루면서 이따금씩 웃음으로써 비판적 거리를 확보하는 전개방식은 민요와 상통한다. 그러면서 장단의 변화가 뚜렷하여, 느린 장단인 진양조로 슬픔을 가중시키고, 빠른 장단인 중중몰이나 휘몰이에다 얹어 웃기는 수작을 쏟아놓는다. 「춘향가」에서 어사 출도 후에 벌어지는 가지가지 기괴한 광경을 엮어낼 때 그런 수법의 표현 효과가 절정에 이른다. 판소리는 정절 · 우애 · 효도 같은 덕목을 내세우며, 양반의 취향에 호응할 때에는 고풍스러운 수사법을 사용하지만, 또 한편으로 현실의 발랄한 움직임을 생동하는 구어(口語)로 나타내 그런 덕목을 뒤집어엎는다.

민속극은 모두 웃기는 연극인 희극이다. 무당굿놀이를 할 때에는 무속에서 섬기는 신이 나와 놀게 한다는 구실을 내세워, 주역인 무당이 일상 생활에서 꼴사나운 일들을 비속하게 흉내내 관중을 웃긴다. 꼭두각시놀음에서는 인형들 사이의 다툼에 악사들만 관중의 입장에서 개입하도록 하고서, 노인의 위엄, 성생활의 금기, 관원의 권위 같은 것들을 함부로 야유한다. 벌거벗은 몸으로 성기를 노출하고 다니는 홍동지가 자기 아저씨라는 박 첨지를 우습게 여기고, 무색하게 만든다. 백성을 괴롭히기만 하는 평안 감사가 초상을 당하자, 상여꾼으로 징발된 홍동지는 평안 감사 어머니의 상여를 자기 성기에다 얹고 간다. 그런데도 평안 감사는 강아지로 제사를 지낸다는 멍청한 소리나 한다.

가면을 쓴 사람들이 여럿 나와 공연하는 탈춤은 사회적인 갈등을 더욱 심각하게 다루어, 부정할 것은 부정하고 긍정할 것은 긍정한다. 노장이라는 승려가 지닌 초탈한 관념의 허위, 양반이 자랑하는 신분적 특권, 할미를 박대하는 영감에게서 볼 수 있는 남성의 횡포를 부정하며, 현실을 현실로 인식하고 평등한 인간관계를 이룩하자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구현한다. 그렇게 하는 방법이 풍자와 해학의 적절한 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노장과 취발이가 맞서고, 양반을 말뚝이가 우롱하는데, 노장이나 양반은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 판국인지 모르기 때문에 풍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취발이와 말뚝이의 해학적 거동은 관중과의 유대를 확인하게 한다. 특히, 봉산탈춤이나 양주별산대놀이는 웃음의 문화가 지닌 속성을 효과적으로 집약하고 고도로 발전시켰다.

근대 이후의 문화와 웃음

스스로 근대화를 이룩하고자 하는 노력이 외세의 침입으로 커다란 타격을 받자, 그 상처가 전통문화 계승의 여러 영역에 걸쳐 나타났으며, 웃음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일제와 싸우는 기간 동안에는 『대한매일신보』의 가사에서처럼 기발하고 효과적인 풍자문학이 나타나 소중한 구실을 하였으나, 국권을 상실하자 사정이 달라졌다. 『대한매일신보』의 가사는 전통적인 수법에다 시사적인 내용을 섞어 매국 행위를 나무라고 민족의 각성을 촉구하면서 반어를 즐겨 사용하여 풍자 효과를 높였다. 그리하여 신문 만평의 탁월한 본보기를 이룩하였는데, 언론의 자유가 없어지자 그대로 계승될 수 없었다.

국권 상실 직후인 1910년대에, 그 전에 신문이나 잡지에 실었던 것에다 자료를 더 보태서 재담집은 낼 수 있어서 웃음의 문화가 단절되지는 않았다. 『앙천대소(仰天大笑)』 · 『팔도재담집(八道才談集)』 · 『소천소지(笑天笑地)』 등의 이름으로 재담집이 여럿 나온 가운데 『소천소지』가 특히 주목할 만하다. 긴 서문이 있어 웃음의 종류를 몇 가지로 나누었다. 즐거워서 웃는 상정(常情)의 웃음도 있고, 울적하면서 웃는 반정(反情)의 웃음도 있다 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남들과 다르게 웃는 이정(異情)의 웃음도 있고, 같이 웃는 동정(同情)의 웃음도 있다 하였다. 그러면서 견딜 수 없는 억압이 자행되는 처절한 상황에 굴하지 말고 조상전래의 웃음을 되살리며, 특히 반정의 웃음으로 난국을 타개하는 지혜를 얻자고 하였다.

재담을 청중들 앞에서 말로 하는 것은 오래 전부터 있던 일이다. 소학지희가 그런 공연물의 좋은 예이다. 그런데 일제강점기부터 만담(漫談)이라는 이름의 재담 공연물이 인기를 모으기 시작하였다. 입장료를 낸 구경꾼들을 상대로 극장 무대에서 공연을 할 수 있는 종목을 확장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라디오 방송이 시작되었을 때에도 만담이 필요하였다. 그런데 공연물 검열 때문에 상당한 제약을 받아 만담가는 시사를 풍자할 수 없었으며, 전래의 소재와 생활 주변의 자질구레한 화제를 이용하는 정도에 머물러야만 하였다. 뱀을 목에 걸고 떠들어대는 길거리의 약장수도 만담가에 못지않은 재주를 자랑하였다.

신문학운동 이후의 문학은 정색을 하고 생활을 묘사하는 데 힘썼으며, 비극적 체험이나 애조를 띤 정서를 중요시하였다. 그리하여 한동안 웃음을 잃었다가 193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 주목할만한 변화가 나타났다. 김유정(金裕貞)채만식(蔡萬植)이 민속예술에서 볼 수 있는 웃음을 되살려 소설 창작의 방법을 삼았다. 김유정은 농촌사회에 누적되어 있는 수탈상을 농민들이 실제로 하는 말을 통하여 생동감 있게 다루면서, 가해자를 풍자하고, 바보스러운 반응을 보이는 피해자에게서도 불만을 느끼도록 하였다. 채만식은 더욱 다양한 수법을 개발하여 사회소설을 쓰기 어렵게 된 상황에 대처하였다. 「탁류(濁流)」에서는 여주인공의 가련한 운명에 동정의 눈물을 흘리도록 하여놓고서는 반어적인 군소리를 늘어놓아 몰입을 차단하고, 독자가 비판적인 웃음에 동참하도록 유도하였다. 「태평천하(太平天下)」에서는 가지가지 해독을 끼치는 수전노의 미욱한 짓을 여러 관점에서 풍자하느라고 판소리나 민속극의 전례를 적극 활용하였다.

이러한 작품은 일본풍의 애조가 침투하는 데 대한 반격으로서도 소중한 의의가 있다. 그런데 예술 작품에서보다 대중문화에서 일본풍의 애조가 더 큰 폐해를 끼쳤다. 축음기 · 라디오 · 영화 등의 새로운 매체를 통하여 보급되는 상품화된 대중문화는 일본으로부터 수입된 것이 적지 않았다. 탈춤은 억압되고, 판소리는 복고적인 취향물로 취급되고, 잡가와 만담도 밀리는 판국이었다. 잡가를 대신하여 일본풍의 유행가가 크게 성행하자 웃음문화는 퇴조하였다. 연극에서는 억지 눈물을 짜내는 신파극이 자리를 잡는 한편, 무리한 짓거리로 단순한 웃음을 일으키는 폭소극이 나타났다. 연극에서 영화로 넘어가면서 폭소극의 성격이 바람직하지 않게 고착화되었다. 주제는 공허하고, 과장된 몸짓과 억지 수작으로 저질의 웃음을 만들어냈다.

눈물을 짜내는 신파 격정극과 억지로 웃기는 소극은 반대가 되는 것 같지만, 서로 호응하는 관계를 가지고 전통문화의 계승을 저해하며 대중화를 황폐하게 하는 구실을 함께 하였다. 텔레비전이 대중 매체로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자 그 두 가지 공연물은 기본 성격을 바꾸지 않고 텔레비전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요즈음은 격정극이 다소 세련되고, 폭소를 노리는 소극의 무리가 줄어든 것이 사실이나, 주제가 빈곤하고 수법이 단조로운 결함이 시정되지 않고 있다. ‘코미디’라고 불려지는 소극이 저질임을 나무라는 소리가 높아도 마땅한 시정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다. 코미디언이라고 불려지는 배우의 연기는 능숙한 편이지만, 대본이 신선하지 못하고 여러모로 제약이 있어 사회 풍자는 배제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코미디언은 운동선수 비슷한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코미디언은 야간 사교장의 밤무대에 가수와 함께 출연하기도 한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격조 높고 뜻이 깊은 웃음은 사라졌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는 반증을 신문이 제공하여준다. 신문 만화는 사회를 풍자하고 정치를 비평하는 것을 임무로 삼아, 그런 데 접근할 수도 없는 텔레비전의 소극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신문 만화는 하나로 독립된 것과 매일 연재되는 것이 있다. 하나로 독립된 것은 일찍부터 있었고, 연재만화는 1920년대에 『조선일보』「멍텅구리」, 『동아일보』「허풍선이」으로 시작되어, 광복 후의 여러 일간지에 빠짐없이 실리는 것이 관례로 되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 각기 오래 연재되던 「고바우영감」「두꺼비」가 특히 널리 사랑을 받았다. 신문 만화는 무엇을 어떻게 풍자하며 함축하는 의미가 어느 정도인가를 알자면 상당한 지적 수준이 필요하지만, 그래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만(漫)’자가 함께 들어가 있는 ‘만록(漫錄)’ · ‘만담’ · ‘만화’는 자유롭게 지어내고 부담스럽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글 · 말 · 그림이며, 셋 다 웃음을 일으킨다. 같은 시기에 공존하지는 않았으며, 선후관계를 가지고 각기 그것대로의 구실을 맡았다. 만록은 사대부의 위엄을 나타내던 한문이 긴장을 풀고 부드러워질 수 있게 하였다. 만담은 영리적인 공연물이 확대되는 시기에 우스개도 그런 쓰임새가 있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만화는 도판 인쇄를 통한 시각문화가 발달한 상황에 맞는 웃음의 문화로 정착되었다. 오늘날에 와서는 만록이 본래의 모습을 잃고 신문 칼럼이나 수필에 흡수되었다. 만담은 그 자체로 공연되는 기회가 적어지고 이른바 코미디와 섞이게 되었다. 그런데 뒤늦게 나타난 만화는 크게 번창하고 종류도 많다. 그 셋 중에서 만화만 성인의 범위를 벗어나 아동들에게서 더욱 큰 인기를 얻었다. 아동만화가 여러 가지 있는 가운데 명랑만화는 천진스러운 웃음을 듬뿍 제공하고, 발랄한 상상력을 키울 수 있게 하는 긍정적인 구실을 한다.

웃음은 표현 형태를 통하여서만 살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글 · 말 · 그림 등으로 옮겨지지 않고, 사람들의 얼굴에 나타나며, 소리로 들리는 웃음 자체도 문화적인 내용과 사회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사 사람들의 일상적인 웃음이 풍성하고 밝으면 사회가 건강하다. 살기 어렵고 불만이 많더라도 웃으면서 문제를 검토하고, 서로 비판하고 단합하면 원만한 해결에 이를 수 있다. 억지 웃음으로 불신을 가리려고 하지 말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실된 웃음을 되살려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하여 웃음의 양상과 의미를 문화사적 관점에서 고찰하여야 한다. 근대 이후 웃음의 문화에서 일어난 파탄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그 전에 오래 가꾸어온 슬기롭고 격조 높은 웃음과 그 표현 형태를 재평가하고 계승하여야 한다.

한국문화의 특징과 웃음

한국 문화의 특징이 웃음을 통하여 어떻게 나타나고, 한국의 웃음문화가 다른 나라와 어떻게 다른가 분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인은 낙천적인 기질을 지녀 웃으며 살아왔다는 모호한 전제를 내세우지 않고 이 문제에 접근하려면 비교문화론의 관점을 택할 필요가 있다. 웃음문화의 유형을 비교하면 한국인의 웃음이 어떤 특징과 의의를 가지고 있는가 어느 정도는 살필 수 있다. 그러기 위하여 불교문화에서의 웃음, 웃음을 나타내는 연극의 비중, 정치풍자의 전통을 특히 중요시할만하다.

불교는 깨달은 경지를 원만한 미소로 나타내는 점에서 비극적인 것을 강조하는 기독교와 아주 다르다. 어느 나라에서나 불상이나 불교설화는 웃음을 한가지 기본 요건으로 하고, 교리상 강조하여야 하는 다른 상징 형태와의 관련을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이 관례이다. 그런데 한국의 불상은 웃음을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낸다. 인도의 불상은 사실적 기법이 돋보이고, 타이를 비롯한 남방의 불상은 위엄 있는 자세를 갖추고, 중국에서는 크고 우람한 불상이 나타나는 변화를 보였다면, 한국의 불상은 소탈하고 다정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특징이다. 부분은 엉성한 듯하지만 전체적인 조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가운데 웃음을 머금은 얼굴이 돋보인다.

일본의 불상과 견주어보면 이런 특징이 더욱 선명하게 확인된다. 일본 경도 고류사(廣隆寺)에 있는 미륵반가상은 한국 불상 특유의 미소를 잘 나타내서 한국에서 전해졌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같은 시기나 그 이후의 일본 불상은 손이나 옷주름 같은 것을 만든 세부 기교는 뛰어나지만 전체적인 모습은 오히려 무섭고 귀기가 돈다. 부처나 보살이 비속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고승이 파격적인 행동을 하며 미욱한 사람들을 희롱한다는 설화가 불교설화의 주류를 이루는 것도 우리 나라를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찾기 어려운 현상이다.

연극은 세계 도처에서 숭고하거나 비장한 연극과 그 반대가 되는 희극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런데 한국의 전통극은 희극만으로 이루어졌으며, 발랄한 웃음으로 사회를 풍자하는 것을 거의 일관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더러 확인할 수 있는 비극적 요소마저도 희극적으로 처리되어 눈물어린 웃음을 자아낼 따름이다. 한국에서는 하층민의 민속극이기만 한 탈춤이나 꼭두각시놀음이 일본 연극에서는 상층 취향의 엄숙한 내용을 자학적인 분위기마저 애써 조성하면서 다루는 것을 보면, 두 나라 문화의 차이점이 명확하게 인식된다. 중국의 고전극에도 애처롭고 비장한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 많아 연극사의 전통이 한국과 다르다.

일본 연극이 옮겨진 신파극이 자리잡고, 서양 연극의 영향을 많이 받아 체질이 바뀐 것 같으나 그렇지 않다. 번역극에서도 비극적인 것은 어색하게 느끼고, 희극적인 요소가 있어야 적극적인 호응을 한다. 더구나 창작극은 희극이라야 뛰어난 작품일 수 있다. 오늘날 탈춤을 이용한 마당극운동이 일어나 커다란 파문을 던지는 것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광대가 시사를 풍자하는 소학지희를 임금 앞에서 공연하여 폐해를 바로잡기도 하였다는 전례가 적지 않은 침해를 받으면서도 줄곧 이어졌다. 양반이 드센 마을에서 탈춤으로 양반을 풍자할 수 있었던 것은 웃음을 통한 비판을 너그럽게 보았기 때문이다. 도시의 탈춤은 체제비판의 주제를 더욱 확대하고, 법으로 다스려야 할 내용을 적지 않게 지녔으나,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도시에서 탈춤을 공연하고 후원하는 이속(吏屬)이나 상인이 드세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관장(官長)이나 다른 양반이 탈춤에서 무슨 소리를 하건 시비를 가리려고 하지 않았다. 이런 전통은 오늘날의 신문 만화로까지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신문 만화의 웃음을 통한 비판은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는 관례에 힘입어 신문의 다른 지면이 준수하는 한계를 넘어선다.

웃음은 외국에서 수입할 수 있는 문화가 아니다. 불상을 만들고 만화를 그리는 것은 외국의 본보기를 보고 익혀서 시작되었어도, 나타내는 웃음은 본뜰 수 없다. 본뜨면 격식화되는데, 격식을 파괴하여야 웃음이 웃음다워진다. 불상에서 만화까지 웃음은 민족공동체의 생활에서 우러나는 맑고 밝은 마음씨의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외래 문화를 권위의 근거로 삼아 웃음에 제동을 걸려는 시도가 한편으로 계속되었으나, 그런 어색한 짓을 웃음으로 풍자하여 녹여버리고는 하였다.

글을 한문으로만 쓰며 말까지도 한문투로 하는 양반네들을 두고서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은 안 친다.’고 비꼬고, ‘수염이 대 자라도 먹어야 산다.’고 빈정대는 데서 어줍잖은 권위를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태도가 잘 나타난다. 요즈음 상점의 간판이 바뀌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검은 붓글씨로 쓴 한자 간판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서양말을 이상스럽게 써붙여 관심을 끌려는 풍조도 무색하게 되고 진부하게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그 대신에 ‘알쏭달쏭’, ‘오며가며’, ‘찡구짱구’ 같은 묘한 말로 된 간판이 늘어나기 시작하였으며 웃음의 문화가 더욱 자리를 넓혀가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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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학과 풍자의 문학』(김지원, 문장, 1983)
『한국신문만화사』(윤영옥, 열화당,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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