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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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소학지희(笑謔之戱)의 하나.
이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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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유희, 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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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소학지희(笑謔之戱)의 하나.
내용

조선시대 소학지희(笑謔之戱)의 하나.

좁은 뜻으로는 노유희(老儒戱)를 일컬으며, 넓은 뜻으로는 궐희(闕戱)를 말한다. 노유희는 조선시대 창우(倡優)들의 소학지희의 하나로, ≪성호사설유선 星湖僿說類選≫에 따르면, “지금 등과한 자들이 창우를 써서 낙(樂)으로 삼으니, 창우들의 놀이에 유희 혹은 노유희라는 것이 들어 있다. 다 떨어진 의관에 온갖 추태를 연출하여 축하연의 즐거움으로 삼는다.”고 하였다.

또 1505년(연산군 11) 12월 29일조에는 공길(孔吉)이라는 배우가 노유희를 놀고 ≪논어≫를 외워 임금이 임금다워야 한다고 하여, 불경하다고 유배되었다고 한다.

성균궐희는 성균관의 유생들이 매년 여름과 겨울에 행하는 일종의 임금놀이로, 놀이의 기원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고려 때부터 행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행사에는 여러 가지 놀이가 뒤따르는데, 오늘날 말하는 모의과거와 모의재판·천도 등의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① 모의재판놀이는 성균관유생들이 행하였던 임금놀이로서 매년 여름과 겨울에 열린다. 먼저 한 사람의 성균관유생이 종이 위에 공자를 상징하는 ‘궐(闕)’자를 써서 임금이 되고, 동학(東學)의 한 유생은 복성국(復聖國:顔子), 남학의 한 유생은 술성국(述聖國:子思), 중학의 한 유생은 종성국(宗聖國:曾子), 서학의 한 유생은 아성국(亞聖國:孟子)의 제후가 되어서 제후가 천자를 섬기는 것과 같이 한다.

그리고 관중(館中)의 상하재(上下齋) 사인(舍人)에게는 백관의 직을 내리되 이조로 임명된 자로 하여금 전선(銓選)을 맡아 현부(賢否)를 분별하게 하고, 이조의 주청에 따라 호명을 하면 임명된 사람들이 차례로 나와서 절을 한다.

그 뒤에 승지가 은대연(銀臺宴)을 베푸는데, 성이 공씨(孔氏)거나 구씨(丘氏)면 모두 종정(宗正:종친)에 임명하였다. 은대연 때 불손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으면 가느다란 끈으로 살짝 목을 묶어 데리고 와서 방의 선반 아래에 가두어놓고 의금부제조(義禁府提調)로 하여금 고문하게 한다.

이 때 더욱 난폭하게 날뛰는 사람이 있으면 짚으로 그 사람 모양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목을 베게 하였다.

② 천도의 토막놀이는 처음 동재(東齋)에 두었던 ‘궐(闕)’자를 명륜당(明倫堂)으로 옮겨놓고 시작한다. 천도를 반포한 뒤에는 다시 서재로 옮겨가는데, 이 때 문관은 종이 위에 색칠을 한 띠를 하거나 보릿짚으로 금대(金帶)를 만들어서 착용하며, 백지를 오려서 망건에 붙여 옥관자(玉貫子)라고 한다.

무관은 종이를 오려서 공작 날개처럼 만든 뒤 전립(戰笠)에 꽂아서 융복(戎服:군복)모양을 갖춘다. 그 뒤 사학(四學:四國)에서 사신을 보내어 조회(朝會)를 하러 오는데, 닭으로 해청(海靑:매의 일종)을 대신하여 공물로 바치면 예조가 사신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는데, 술을 한 잔 대접하고 안주로는 두부를 주는 것으로 대신한다.

그 뒤 어린 재직(齋直)을 시켜 솥뚜껑을 두드리게 하여 노래를 권하는데 이것을 동악(動樂)이라고 이름하였다. 다음에는 관(館:천자국)에서 사학으로 사신을 보내는데, 이 사신을 천사(天使:천자의 사신)라 하였다. 사학에서는 사신에게 베와 비단을 방에 있는 기둥에 둘러싸서 예물로 주는데 이를 결채(結綵)라 한다.

≪용재총화 慵齋叢話≫에는 옛날 천자의 사신이 된 윤심(尹深)이 겉에 붉은 천의 옷을 입고 대나무 말을 타고 거리를 지나가니 사람들이 모두 보고 웃음을 금하지 못하였다. 윤심은 손을 저으면서 중국에서 온 것처럼 하기 위하여 중국 말투를 하며 멋대로 날뛰었고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전한다.

1459년(세조 5)과 1519년(중종 14)에 있었던 천도궐희의 천도조문(遷都詔文)을 보면, 우선 동도(東都)의 나쁜 점을 말하고 서도(西都)의 좋은 점을 찬미하고 있다. 이 때의 조문은 깊이 있는 은유로 표현된다.

③ 과거놀이는 석전제(釋尊祭:매년 음력 2월과 8월에 문묘에서 공자에게 지내는 제사) 전날에 행하여진다. 먼저 삼공(三公)을 뽑고 나머지 사람에게 모두 별도의 봉백(封伯)을 내리며 하재(下齋)의 학생들에게도 모두 직책을 준다. 이 때 사학에서도 와서 석전제를 돕는다.

과거를 실시하게 되면 해학적인 시험제목을 내어 글을 짓게 하고, 등급을 가려서 합격한 자를 천장급제(天場及第)라고 이름하였다. 해학적인 시험제목은 매번 다르지만, 예를 들면 “와서 별제를 하였으니 가서는 무슨 벼슬을 할 것인가”, “전에는 이씨라 하였으니 지금은 무슨 성(姓)이냐” 등의 제목을 낸다.

답안 역시 해학적으로 풀이하게 된다. 그리하여 시관이 고점(考點)을 하여 장원이나 입선을 하면 뜰에서 크게 창방(唱榜)을 하고 정당(政堂)에 이름을 적어 대성전(大成殿) 뜰에 포고하면 헌관과 선생이 모두 모여서 보게 된다.

이 형식은 조정에서 과거보이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이렇게 하여 유생들이 평소에 울적한 심정을 한번씩 풀어 보기도 하고, 또 심지어 정치적 비리를 이 때에 풍자하여 위정자들을 각성시켜 정부에서 시정한 사례도 많았다고 한다.

이것을 본떠서 각 지방의 서당에서는 원놀음이라는 놀이를 하였다. 학생들 중에서 원님과 육조의 아전이 임명된 뒤 직위를 맡지 않은 학생 중 하나가 송사(訟事)를 제기하는데, 이 때에도 임금놀이처럼 해학적인 사건을 가지고 와서 송사한다.

참고문헌

『용재총화(慵齋叢話)』
『성호사설류선(星湖僿說類選)』
『조선상식문답』(최남선, 동명사,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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