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비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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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비문학
개념
말로 정착된 문학.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구비문학은 말로 정착된 문학이다. 구전문학이라고도 한다. 구비는 비석에 새겨 놓은 것처럼 오래도록 전해온 말을 뜻한다. 구전되는 것 중에서 설화·민요·무가·판소리·민속극·속담·수수께끼만이 구비문학에 포함된다. 기록문학이 생기기 이전부터 있었으며 기록문학을 낳은 단초이기도 하다. 한문 전래 이전의 국문학은 온전히 구비문학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구전되어가면서 거듭 창작되고, 유동적이면서 계속 쌓여가는 특징을 가진다. 구연되는 현장에 존재하는 문학으로 구연자와 청중이 상호 영향을 끼치면서 구현되는 것이어서 공동의 것이자 개인의 것이기도 하다.

목차
정의
말로 정착된 문학.
내용

구비문학은 기록문학이 생기기 이전부터 있었으며, 기록문학과 함께 오늘날까지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구비문학과 기록문학이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나라마다 달라서, 거의 구비문학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이와는 반대로 문학의 범위를 기록문학만으로 논의해도 사실상 큰 지장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국문학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구비문학과 기록문학을 아울러 발전시켜 온 문학이다.

구비문학은 말로 전해지는 문학이라는 의미에서 구전문학(口傳文學)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구비문학이라는 용어를 택한 데에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구비’라는 말의 어원은 비석에 새겨 놓은 것처럼 오래도록 전해 온 말을 뜻한다. 돌에다 새긴 비석보다 말에다 새긴 비석이 더욱 진실되다는 생각에서, 옛 사람들이 ‘석비(石碑)’에다 빗대어 ‘구비’라는 낱말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또한 구비는 ‘구전심비(口傳心碑)’를 줄인 말이다. 말로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내용을 마음에다 새긴 것처럼 절실하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그런 용어를 사용했던 것이다. 결국, 구비문학은 단순한 구전이 아니고, 절실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사연을 일정한 형식이나 구조를 갖추어서 나타내는 문학을 가리킨다. 그리하여 구전되는 것 중에서 설화 · 민요 · 무가 · 판소리 · 민속극 · 속담 · 수수께끼만을 구비문학이라고 한다.

구비문학을 민속문학(民俗文學)이라 부르기도 한다. 민간 전승인 민속을 전승 방식으로 분류하면, 물질 전승, 행위 전승과 함께 구비 전승도 있을 수 있다. 또한, 민속을 그 구성요소에 따라 나누면, 민속공예, 민속음악 등이 있듯이 민속문학도 있다. 그런데 구비 전승이라고 해서 모두 민속 문학은 아니다. 욕설 · 금기어 · 명명법 등은 구비 전승이기는 하나 민속 문학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민속 문학은 구비문학에 해당되는 것들만 지칭하는 용어이다. 민속 문학과 구비문학은 그 내포는 같으나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용어가 생긴 것이다. 민속의 다른 영역과 관련시켜 다루는 민속학적 관점으로는 민속 문학이라 부르고, 기록문학을 포함한 문학의 범위 안에서 상호 관련을 문제삼는 문학 연구에서는 구비문학이라고 부른다.

구비문학을 유동문학(流動文學), 표박문학(漂泊文學), 적층문학(積層文學) 등으로 지칭하는 경우도 있다. 구전되면서 거듭 창작되기 때문에 그 모습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거듭 창작될 때마다 내용이 누적되어 간다는 특징을 들어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구비문학은 특정인이 어느 때 창작해 글로 정착시킨 문학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유동적이고 표박하고 있으며 적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국문학 연구를 기록문학 위주로 해 오는 동안에는 소설의 근원 설화를 찾고, 시가의 형식과 관련해서 민요에 관심을 가지는 등 구비문학을 기록문학 연구의 보조 자료 정도로만 인식해서 구비문학의 특수한 예외성을 강조하느라 그러한 용어를 앞세웠다. 그러나 구비문학의 그러한 실상이 기록문학에 비해서 예외적인 것도 아니고, 문학 연구에서 다루기 거북한 것도 아니다. 구비문학을 본격적인 문학 그 자체로 다루어야 마땅하다는 관점이 대두하면서 문학 이론의 반성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기록문학 위주의 문학관에서 파생된 유동문학, 표박문학, 적층문학 등의 용어는 지금은 널리 통용되지 않는다.

구비문학은 구연되는 현장에서 존재하는 문학이다. 현장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구비문학의 작품은 두 가지 개념의 복합체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온 유형으로서의 작품은 어느 개인의 것이 아니며, 특정 시기의 사정만을 나타내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전승을 기억했다가 누가 어느 시기에 구연하는 개별적인 작품인 각편(各篇)은 구연자 자신이 지금 내놓는 작품이다. 그러므로 그 작품은 유형으로서의 보편성과 각편으로서의 특수성을 함께 지니고 있다.

그런데 구연은 혼자서 즐기자는 것이 아니어서 청중이 필요하며, 청중이 구연 내용에 관여하거나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뛰어난 이야기꾼이라면 청중을 자신이 뜻하는 방향으로 이끌면서 자기의 재능을 발휘한다. 이런 의미에서 구비문학은 공동의 것이면서 또한 개인의 것이다. 한편, 구연을 할 때는 생활상의 필요성과 관련된 일정한 상황이 주어진다. 모내기를 하면서 모노래를 부르고, 일을 마치고 쉬는 시간에 긴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구연 내용은 상황에 의거하면서 동시에 상황을 넘어서기도 한다. 기능적인 민요라고 해서 기능 수행에 꼭 필요한 사설로만 엮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사정을 두루 종합해 보면 구비문학은 보편성과 특수성, 구연자와 청중, 자기 표현 의지와 상황 사이의 긴장된 관계에서 존재하는 가변적인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구비문학은 국문학의 저층을 이루어 왔다. 구비문학은 기록문학이 없이도 존재하지만, 기록문학은 구비문학이 선행하지 않고서는 생겨날 수 없었다. 한문이 전래되기 전의 국문학은 온전히 구비문학이었다. 그 중에서 건국 신화 또는 건국 서사시라 할 수 있는 것이 고대 문학에서 특히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그 내용이 후대 역사서에 한문으로 수록되어 전하나, 실제 내용은 그보다 훨씬 풍부했으리라고 짐작된다. 이러한 건국 서사시의 맥락은 무속 서사시인 서사 무가로 이어져, 그 전통을 소설로까지 이어준 것으로 추정한다.

그 뒤에 한문학, 차자 문학(借字文學), 국문 문학으로 전개된 기록문학은 어느 것이나 구비문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전개되었다. 한문학은 중국에서 이미 만들어진 격식과 내용을 이식하는 데 머물지 않고, 우리 문학으로서의 독자성을 갖추고자 할 때마다 구비문학을 정착시키는 데 관심을 가지거나 구비문학의 유산에서 따온 소재를 이용하였다. 더구나 향가에서 시조 · 가사에 이르기까지의 국어로 된 시가 문학은 일단 민요에서 형성된 율격 및 장르적 원리를 바탕으로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길을 개척하였다.

한편, 새로운 문학 담당층이 전에 없던 장르를 내놓을 때는 구비문학을 발판으로 삼지 않을 수 없었음은 문학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이다. 그 가운데에서 특히 조선 후기 평민 문학이 설화를 발전시킨 국문 소설을, 민요를 끌어와 다시 이룩한 사설시조를, 서사 무가를 개조했다는 판소리를 내놓으며, 탈춤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린 것은 주목할 만한 문학사의 전환이 아닐 수 없다.

구비문학이 국문학의 저층이라 함은 구비문학이 민중의 문학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민중은 좁게는 생산 활동에 직접 종사하는 사람들이고, 넓게는 한문으로 이룩된 상층의 문화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생산 활동과 구비문학의 관계는 민요를 통해 잘 나타난다. 민요는 원래 농사를 짓고, 길쌈을 하고, 고기잡이를 하는 등의 일을 하면서 행동을 통일하고 흥을 돋우기 위한 노동요로 시작되었다. 놀이를 하면서 부르는 유희요나, 의식을 거행하면서 부르는 의식요라도 직접 생산 활동에 종사하는 민중만의 노래로서, 노동요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형성되었다. 그러므로 민요는 일하는 사람의 의식을 나타낸다.

그런데 이러한 특징이 무가 · 판소리 · 민속극에서는 전문적인 놀이패가 관여해 변질되기도 하고 다듬어지기도 한다. 무가는 무당이, 판소리는 광대가 부르는 것이고, 민속극 공연자들도 어느 정도는 전문화되어 있다. 이들은 상층 문화와도 접촉을 가지면서 노래나 놀이를 생활 수단으로 삼았으므로 유식한 문구를 늘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에 대한 불만을 표현거리로 삼으면서 뜻하는 바가 단순하지 않은 작품 세계를 보여 주었다.

설화 · 속담 · 수수께끼는 그 형식이 예사로 하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문학에 접근할 수 없고, 국문 문학의 독자일 수 있는 자격도 미비한 하층일수록 이런 것들에서 흥미와 지혜를 찾는 데 더욱 열의를 가졌다. 그래서 구비문학은 다른 자료를 통해서는 거의 엿보기 힘든 하층 민중의 의식을 알아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의의가 있다. 또한, 외래 문화가 상층을 통해서 수용될 때 온통 그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하는 민족적 저력으로 작용해 왔다는 점에서 구비문학은 소중하다.

구비문학이라는 용어와 그 개념이 명확하게 정립되고 연구 또한 본 궤도에 오른 것은 1960년대 이래의 일이다. 그 전에도 민속학적 관점에서 설화 · 민요 · 민속극 등에 관한 조사와 연구가 있었으며, 그 중 어느 분야에 대한 강의가 국문학과에 개설되기도 하였다. 또한, 기록문학의 원천이자 소재가 되는 구비문학의 자료를 주로 문헌에서 찾아 다루는 작업도 민속학이 아닌 국문학이 맡아서 국문학 연구의 출발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그러나 1961년에 와서야 비로소 ‘구비문학론’이라는 이름의 강의가 처음으로 개설되었다. 그 뒤 1967년에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에서 나온 『한국문화사대계』에서는 ‘구비문학사’가 등장해서 국문학사를 서술하는 데 구비문학도 뚜렷한 한 영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구비문학에 대한 전반적인 체계화는 1971년에 나온 한국구비문학회의 『구비문학개설』에서 이루어졌다. 이 책은 구비문학에 관한 총론과 각론을 두루 구비했는데, 총론에서는 개념과 연구의 관점, 구비문학에서 기록문학으로의 이행, 구비문학의 현지 조사를 다루었고, 각론에서는 설화 · 민요 · 무가 · 판소리 · 민속극 · 속담 · 수수께끼를 균형 있게 서술하였다. 구비문학의 자료 조사는 지역이나 분야에 따라서는 이미 상당히 이루어지기는 했으나, 전국적인 규모로 계획된 전반적인 조사는 1979년 이래 출간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한국구비문학대계』에서 이루어졌다.

구비문학의 위기는 근대화농촌 지역에서까지 진행되면서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농사짓는 방식이 달라지면서 농업 노동요마저 지속되기 어려운데다 전파 대중 매체가 새로운 흥미거리를 제공하게 되어 스스로 노래부르고 이야기할 기회가 적어지고 있다. 판소리나 탈춤 같은 것은 도시로 진출했으나 새로운 창작은 막혀 버렸다. 무가는 무당이 불신되면서 그 명맥이 위험하게 되었다. 민요와 설화 중 설화는 전승 상태가 비교적 나은 편이나 앞으로는 대부분 그냥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러한 사태의 근본적인 역전은 기대할 수 없으므로 두 가지 대책이 요망된다. 하나는 아직 남은 자료를 충실히 조사하는 것으로, 국가적인 사업도 필요하고 개인적인 노력도 소중하다. 다른 하나는 구비문학의 유산과 전통을 현대 예술로 받아들여 발전시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민속 예술의 하나인 구비문학은 대중 예술로 바로 전환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둘을 가능한 한 접근시키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참고문헌

『구비문학개설』(장덕순 외, 일조각, 1971)
『우리 민속문학의 이해』(김열규 외, 개문사, 1979)
『구비문학의 세계』(조동일, 새문사, 1980)
『한국구비문학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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