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국보(國寶), 호는 기옹(寄翁). 할아버지는 이조판서 남용익(南龍翼)이고, 아버지는 관찰사 남정중(南正重)이며, 어머니는 이조참판 이인환(李寅煥)의 딸이다.
가계가 서인(西人) 계통으로 1694년(숙종 20) 갑술옥사 이후에 경사(京師)에서 공부하였다.
1710년 진사가 되고 왕자의 사부 등을 지내다가, 1712년에 현릉참봉을 비롯하여 내직으로 내시교관·광흥창주부·형조좌랑·세자익위사익찬·의금부도사·호조좌랑·형조정랑·장악원첨정·한성부서윤·군자감판관·호조정랑·사도시첨정 등과 외직으로 영평현령·김제군수·청풍부사·정선군수·청송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나이 70이 넘자 아들 남유용(南有容)이 시종(侍從)인 덕에 추은으로 기로사에 들어갔으며, 첨지중추부사·동지중추부사·장례원판결사 겸 오위도총부부총관에 이르렀다. 인품이 단정하고 청렴하였으며 평소에 글을 좋아하였다. 저서로는 『기옹집(寄翁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