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백린 ()

근대사
인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무총장과 국무총리를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칭
아명
노진방(盧鎭邦)
경보(景輔)
계원(桂園)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75년
사망 연도
1926년
본관
풍천(豊川)
출생지
황해도 송화군
주요 경력
한국무관학교장|해서교육총회 회장|태평양시사 사장 겸 주필|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총리
대표 상훈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내용 요약

노백린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무총장과 국무총리를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무관으로서 서북학회, 대한흥학회, 신민회 등에서 활동하고, 대한제국이 멸망한 후에는 미국 하와이로 건너가 활동하였다. 그 후 1919년 9월 통합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무총장에 임명되었고 국무총리의 자리까지 올랐다.

정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무총장과 국무총리를 역임한 독립운동가.
인적사항

노백린(盧伯麟, 1875~1926)은 황해도 송화군 출신으로,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경보(景輔), 호는 계원(桂園)이다. 어릴 때 이름은 노진방(盧鎭邦)이었으나 뒤에 노백린으로 바꾸었다.

주요 활동

어려서 한학을 공부하였고 1895년 관비(官費) 유학생에 선발되어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가 일본 도쿄〔東京〕에 설립한 게이오의숙〔慶應義塾〕에 입학하였다. 이듬해 졸업하여 예비사관학교인 세이죠학교〔成城學校〕에 입학해 2년 만에 졸업하고, 1898년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였다. 이듬해 졸업과 동시에 보병 제1연대와 제3연대 포병대와 공병대에서 견습사관 생활을 시작하였다.

1900년 귀국한 후 1901년 한국무관학교 교관에 임명된 이래 1907년에 군부교육국장, 한국무관학교장 등으로 사관 양성에 힘을 쏟았다. 1905년부터는 주1 단체에 참여하면서 사회 활동도 전개하였다. 대한구락부 창립에 관여하였으며 일본 유학생 단체 통합운동을 지원한 끝에 1909년 대한흥학회가 탄생하였다.

1906년에는 관서 지방 인사들로 조직된 서우학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한북흥학회와 통합하여 서북학회로 된 후 교사 양성을 위한 서북협성학교를 설립하였다. 대한자강회와 그 후신인 대한협회에도 참여하였다. 동시에 비밀결사였던 신민회 조직에도 참여하였다. 1908년 한국무관학교장을 그만두고 한성(지금의 서울특별시)을 떠나 낙향하였다.

황해도 풍천에 있는 광무학당 교장에 취임하였고, 여성 교육을 위한 연성학교를 설립하는 한편 농민들을 위한 야학도 운영하였다. 1909년 해서교육총회 회장에 선출되었고 유길준이 조직한 흥사단에 평의원으로 참여하였다. 퇴역 장교들과 함께 대한공업회를 조직하여 실업운동에도 뛰어들었다. 1910년 대한제국이 망하자 1912년부터 은둔 생활에 들어갔다.

1916년 대한광복회에 가입하고 망명길에 올랐다. 중국 상하이〔上海〕를 거쳐 12월에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하였다. 박용만대조선국민군단을 조직하여 군인을 양성한다는 소식을 접한 후 그와 교섭하여 별동대 주임으로 군사 활동에 참여하였다. 1918년 11월 『 태평양시사』를 창간하고 사장 겸 주필로 활동하였다.

1919년 9월 통합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군무총장에 선임되었다. 하와이에 있으면서 1920년 1월 군무부 포고를 발표하는 등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1921년 12월 이승만, 김규식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는 상하이에 도착하였다. 이승만이 공식적인 업무를 시작하면서 각료들과 갈등을 빚자 이를 해소하기 위해 힘썼다. 결국 이승만은 하와이로 돌아갔지만, 끝까지 난국 수습에 노력하였다.

이승만에 의해 국무총리에 임명되어 내각 구성에 나섰으나 재무총장 이시영과 외무총장 조소앙 이외에는 누구도 취임하지 않았다. 결국 1924년 4월 국무총리 사임서를 제출하였다. 후임 국무총리직을 맡은 이동녕에 의해 군무총장, 참모총장에 임명되었다. 박은식 대통령 대리 하에서는 군무총장과 교통총장을 겸임하였다. 1926년 1월 지병인 심장병과 정신쇠약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주2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노백린의 생애와 독립운동』(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3)

논문

홍윤정, 「노백린의 항일독립운동연구」(『한국민족운동사연구』 18, 한국민족운동사연구회, 1998)
주석
주1

17~18세기에 유럽에서 일어난 합리주의적 개화 운동. 중세적인 인습과 편견에 젖어 있는 사람에게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판단력을 가지게 하는 운동이다.    우리말샘

주2

죽은 뒤에 관등을 올리거나 훈장 따위를 줌. 우리나라의 경우 긴급 상황에서 살신성인의 정신을 실천하다가 사망하거나 위급한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여 사회 전체의 본받을 만한 모범이 된 사람, 생전에 큰 공을 세워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덕망을 갖춘 사람에게 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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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정인(춘천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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