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높이 4.2m. 앙련과 복련이 마주하여 잇대어진 연화좌(蓮花座)에 결가부좌한 본존은 두광과 신광이 모두 표현되어 있다. 광배는 삼중(三重)의 원으로, 두광과 신광의 밖에는 화염문(火焰文)을 선각으로 새겼으며, 그 안에 4구의 비천상을 위·아래에 대칭으로 배치시킨 것이 특징이다.
하단의 비천상은 한쪽 무릎을 세우고 다른 한쪽 다리를 꿇은 자세이고 얼굴은 본존을 향하여 있다. 한 손은 무릎 위에 얹고 다른 한 손은 지물(持物)을 들고 있으며 연화좌에 앉아 있다. 상체는 고려시대 보살상에 크게 유행했던 착의법인 천의 자락을 어깨에서 겨드랑이로 돌려 가슴 앞에서 묶어 내리는 보살 옷을 입었다. 하체는 상의(裳衣: 치마)를 입었다. 등 뒤로 천의 자락이 휘날리고 있어서 하강하는 비천상인 것을 알 수 있다.
본존은 머리가 소발(素髮)인데 알맞은 크기의 육계가 뚜렷하다. 넓적한 직사각형의 얼굴은 근엄하고 풍만한 편이다. 좁은 이마에 작은 백호공(白毫孔)이 있으며, 두 눈은 정면을 주시하고 있다. 여기에 적당한 크기의 코, 작고 두꺼운 입에, 귀는 길어 어깨에 닿았다. 비만한 목은 짧아 삼도(三道)가 가슴에 표시되었다.
어깨에는 두꺼운 통견의(通肩衣)를 걸쳤다. 옷 주름 선은 굵은 띠 주름의 평행단상밀집무늬[平行段狀密集衣文]로, 양팔과 다리 등에 부자연스럽게 나타나 있다. 이때의 굵은 띠 주름은 얇게 빚은 듯한 평행 계단식의 옷 주름 무늬가 퇴화한 듯하다. 평판적으로 처리된 가슴에도 주름이 잡힌 승각기[내의(內衣)]가 보인다.
왼쪽 어깨의 띠 매듭에는 가사를 묶는 띠가 달려 있으며 어깨 뒤쪽의 고리에서 어깨로 내려와 팔꿈치에 닿아 있다. 이 가사 띠는 승려 초상화에 흔히 표현되는데, 불상의 경우 8세기 중엽에 조성된 경주 남산 용장사 장륙미륵존상 등 몇 예가 있지만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손 모양은 왼손은 오른 발바닥 위에 올려놓고 오른손은 손등을 보이면서 오른 무릎 위에 얹은 모습으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과 유사하다. 또한 두 팔이 허리와 붙어서 잘록한 허리의 굴곡이 묘사되어 있지 않아서 둔중한 느낌을 준다.
전체적으로 풍만하게 표현된 이 불상은 상체에 비하여 하체가 빈약하게 처리되는 등 비례가 맞지 않아 안정감이 없다. 힘없는 손이나 부자연스런 발 등 세부 묘사도 빈약하게 처리되었다. 비천상도 본존과 마찬가지로 하체가 짧은 둔중한 신체를 보인다. 이와 같이 불상에는 앞 시대의 조각 수법과는 다른 고려시대의 특징적인 모습이 나타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유려한 수법이 아직 남아 있어 당대의 거불군(巨佛群)을 대표하는 우수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