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경기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산신각은 맞배지붕을 한 단칸의 규모로서, 평면은 앞부분이 터지고 뒷부분은 문과 벽으로 되어 있는 전당후실제(前堂後室制)로 되어 있다.
기단은 3.1m×4.1m 크기의 장대석으로 둘렀으며, 전당은 전돌로 깔려 있다. 후실의 전면은 6쪽의 판벽과 판문으로 되어 있는데, 판벽과 판문에는 책거리 · 꽃 · 쌍희문(雙喜文) 등을 음각하고 호화롭게 단청을 하였다. 이와 함께 산신각 건물 전체가 단청으로 되어 있으나, 지금은 많이 퇴색되어 있다.
양 옆면과 뒷면의 아래 벽은 돌담으로, 위 벽은 회벽으로 되어 있으며, 양옆에는 풍판(風板: 바람과 비를 막으려고 길이로 잇대는 널조각)으로 막았으며, 뒷면의 위 벽에는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는 그림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전당 판문 위 중앙에는 ‘산신각’이라는 글씨가 희미하게 남아 있는 현판이 걸려 있다.
그 맞은 편 처마에도 현판 3개가 걸려 있는 데, 검은 붓글씨로 쓴 내용이 비교적 잘 남아 있는 중앙의 현판에 의하면, 1888년(고종 25)에 작성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 내용으로 보아 이 산신각은 최소한 1888년 이전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후실 안은 쪽마루로 되어 있으며, 중앙에 탱화풍의 산신도가 모셔져 있는데, 그 오른쪽 밑에 적혀 있는 화기(畫記)로 보아 1935년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광복 전후까지는 음력 1월과 10월 초하루에 무당을 불러 큰 대동굿을 올렸으나, 지금은 마을에서 생기복덕이 맞는 깨끗한 사람 1명을 뽑아 화주로 삼고, 밤에 유교식 제사를 지내고 있다.
마을회관에 보관되어 있는 제기 가운데 목기와 유기로 된 것은 상당히 고급스럽고 고식(古式: 옛 식)을 띠고 있는 점으로 보아, 산신제의 규모와 격식이 제법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 보았을 때, 전통적인 산신신앙이 무속과 불교와 유교와 융화되어 이루어진 마을신앙의 모습을 잘 보여 주는 자료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