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의 충신 최영(崔瑩)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1780년(정조 4) 영당만 세워 그곳에 최영의 영정을 모시고 제를 지내며 두천사영당(豆川祠影堂)이라 불렀으나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었다.
1900년 다시 이곳에 영당을 세우고 최영의 영정을 모셔 제를 계속 지내다가 1962년 영정 대신 위패로 바꾸어 모시고 이름을 두천사라 하였다. 1칸의 일각문과 정면 3칸의 사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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