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건물. 1983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선조때 형조참의(刑曹參議)를 지낸 만취(晩翠)김위(金偉)가 1572년(선조 5)에 건립한 정자이다.
김위는 조선개국공신 계림군(鷄林君)김균(金稛)의 7세손으로 1558년(명종 13)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1562년 합천군수 등 아홉 고을의 부사를 지내면서 선정을 베풀어 각 고을 마다 선정비가 세워졌다고 한다.
또한 그는 홍문관 부교리 및 예문관에 오르는데, 그 때 이곳 선산 밑에 만취정을 지어 후진양성을 위한 강학당으로 사용하였다. 1814년과 1834년에 중수되었고, 1984년에는 석축공사와 함께 전체적으로 해체복원되었다.
뻗어오른 추녀의 네 귀에는 활주가 받치고 있다. 평면은 왼쪽 2×2칸이 방이고, 주위에 모두 마루가 시설되었다. 방 전면에는 각각 2짝의 세살문을 달았다. 방과 청(廳) 사이는 3짝 분합문이 있어 마루와 방을 한 공간으로 터서 넓게 사용할 수 있다.
마루는 입구를 제외하고는 주위에 계자난간(鷄子欄干 : 초각한 짧은 기둥으로 꾸민 난간)이 둘려쳐 있는데, 난간 하부에 머름이 설치되어 있다. 2익공식(二翼工) 형식의 보편적인 구조를 따르고 있는 정자 안에는 정철(鄭澈) · 기대승(奇大升) · 임제(林悌) 등 당대의 대학자들의 시판(詩板)이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