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짜기

의생활
개념
고려 말, 이후 지금까지 목화를 따서 솜을 타 실을 잣고 베틀에서 무명베를 짜는 작업.
이칭
이칭
목면(木綿) 짜기, 목면(木棉), 무명베짜기
속칭
미영짜기
약칭
면포(綿布)짜기
내용 요약

무명짜기는 고려 말 이후 지금까지 목화를 따서 솜을 타 실을 잣고 베틀에서 무명베를 짜는 것을 말한다. 한말 이후 전통 무명짜기는 사라질 위기에 처해 현재 국가와 시도 무형유산으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다. 무명짜기는 방적 과정과 방직 과정으로 구분된다. 방적 과정은 씨앗기, 솜타기, 고치말기, 실잣기로 실을 만든다. 방직 과정에서 씨실은 꾸리감기로 단순하며, 날실은 베뽑기, 베날기, 날실 익히기, 바디 끼우기, 베매기를 거쳐 베틀 위에서 날실과 씨실을 교차시켜 베짜기한다. 다 짠 무명베는 잿물에 삶아 손질하는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키워드
정의
고려 말, 이후 지금까지 목화를 따서 솜을 타 실을 잣고 베틀에서 무명베를 짜는 작업.
역사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으나 무명을 짜기 시작하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첩포(白氎布)라는 면포를 짰고, 중국에 보내던 기록이 있다. 현재와 같은 목화가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고려 말 1363년 문익점이 원으로부터 새로운 면 종자를 들여오면서부터이다. 이후 정천익이 싹을 틔워 200여 개를 얻었다. 1367년 여러 명이 재배하고 실을 뽑고 무명을 짜 10년이 지나지 않아 전국에 퍼져 나갔다. 15세기 초 『세종실록 지리지』(1419~1450)에 의하면 전국에서 면을 재배하여 모든 백성들이 면직물을 입게 되었다. 조선 후기에 육의전에는 면포전(綿布廛)이 있었고, 19세기의 『임원경제지』에 의하면 전국 324곳의 시장 중 면포는 240개소에서 유통되어 전국에 상품으로 판매되었다.

한말부터 일제강점기에는 서구의 방적기나 방직기로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된 기계직 면포가 값싸게 수입되었고, 방적기로 제작한 면사나 개량 베틀이 보급되면서 면포를 제직하는 농가는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해방 이후 질기고 다루기가 좋은 나일론이 나오면서부터 재래식 방법에 의한 길쌈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였으며 1960년대 중반쯤에는 거의 다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에 국가와 시도에서 무형유산으로 무명짜기를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다.

방적 과정

무명짜기는 크게 실을 만드는 방적 과정과 베를 짜는 방직 과정으로 구분된다. 방적 과정은 봄에 씨를 뿌린 목화를 가을에 수확하면서 비롯한다.

씨앗기는 목화송이에서 솜과 씨를 분리하는 일이다. 상하 가락이 맞물린 씨아틀과 광주리를 준비한다. 채취한 목화송이를 잘 말린 다음 씨아에 물리고 손잡이를 돌리면 씨는 가락 앞으로 떨어지고 솜은 뒤쪽 광주리에 쌓인다.

솜타기는 목화를 부드럽게 펴고 티끌을 제거하는 일이다. 대나무를 활처럼 휘어 만든 2m 정도 길이의 솜활을 이용한다. 솜활을 한 손에 들고 반대 손에는 활꼭지를 쥐고 삼노끈으로 만든 활줄을 튕기면 진동에 의해 솜이 뭉게구름처럼 부풀어 오른다. 활줄을 튕겨 솜을 부풀리면 남아 있던 씨앗 껍질도 깨끗하게 떨어뜨리게 된다.

고치 말기는 피어오른 솜을 돌돌 말아 실을 빼낼 고치를 마련하는 일이다. 말대와 고치 말판이 필요하다. 말대는 길이 40cm, 지름 1cm 정도의 매끈한 참대나 수수깡을 사용한다. 고치 말판은 포 40cm, 폭 10cm, 높이 3cm 정도의 편평하고 매끈한 것을 사용한다. 판 위에 잘 부푼 솜을 알맞게 뜯어 펴고 말대에 길게 얹은 다음 왼손 바닥으로 8~10번 솜을 비벼 감는다. 크기와 굵기가 균일하게 만들어지면 말대에서 빼내며, 고치는 길이 25~30cm에 굵기 1.5cm 정도인 것이 좋다.

실잣기는 말아 놓은 고치를 물레를 돌려 실을 뽑고 이것을 가락에 올리는 것이다. 무명짜기 중에서 가장 어렵고, 오랜 숙련과 경험이 필요한 과정이다. 물레의 가랫장에 물렛돌을 얹어 고정시키고 가락을 끼우고 물렛줄을 팽팽하게 당긴 다음, 오른손으로 물레바퀴를 회전시키면 왼손에 쥔 고치 끝의 실머리에서 실이 풀리면서 함께 도는 가락에 감기게 된다. 가락에 볏짚을 가락옷으로 끼우고 그 위에 면고치를 갖다대고 실 끝과 고치 끝을 함께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으로 물레를 돌릴 때 왼손을 서서히 들어올리면 손끝 고치에서 뽑아져 나온 솜이 합쳐지면서 가늘게 실이 나오게 된다. 보통 물레 5~6회 회전에 50~60cm의 실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계속 감아서 가락의 실이 불어나 가운데가 볼록하게 실톳이 만들어지면 실뎅이를 가락옷까지 함께 가락에서 빼낸다. 실뎅이의 가장 굵은 부분의 직경은 약 5cm 정도이고, 가락 끝의 0.5mm 정도는 밖으로 나오게 감는다. 이렇게 가락옷에 감긴 실뭉치를 실뎅이 혹은 실톳이라고 부른다. 무명 한 필을 짜려면 10개의 실뎅이가 필요하다. 날실 80올이 한 새인데 보통 베는 7새 내지 8새이며, 고운 것은 10새 이상으로 짠다.

방직 과정

방직 과정은 무명베를 짜는 과정이다. 실잣기를 통해 무명실이 만들어지면 날실과 씨실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무명의 날실은 '베뽑기', '베날기', '날실 익히기', '바디 끼우기', '베매기' 및 '베짜기'로 구성된다. 씨실은 '꾸리 감기'와 '꾸리 삶기'로 구성된다.

베뽑기는 실뎅이 열 개를 고무대(고무래) 혹은 조슬대라고 불리는 10개의 구멍이 있는 날틀을 통해 실올을 10가닥씩 뽑아내는 것을 말한다. 베날기는 뽑아져 나온 10올의 실을 모아 쥐고 베를 나는 ‘정경(整經)’을 말한다. 두 과정은 일반적으로 통합하여 ‘베날기’ 혹은 '미영날기'라고 한다.

첫째 베뽑기는 10개의 실뎅이와 이것을 꽂을 날꼬챙이와 10올씩 빼내는 날틀이 필요하다. 날틀의 구조는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나 실이 풀려져 나오는 원리는 한 가지이다. 10개의 실뎅이를 날꼬챙이에 꿰어 놓고 실끝을 고무래의 가로 막대의 철사에 볏짚까지 그대로 끼운 후 그 구멍 사이로 통과시켜 10가닥의 실을 뽑아내 는 것이다. 오른손으로 모아 잡은 한 모슴의 실을 왼손으로 당기며 약 1m 가량의 실이 뽑아지면 이 실을 왼손에 여러 번 감고 가만히 빼서 종이를 깔아 둔 광주리에 살며시 사려 담는다. 실 끝을 엄지와 검지로 잘 잡아 쥐고 10올의 실을 똑같은 장력과 길이로 뽑아 끊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다루어 순서대로 동그랗게 감아 담는다.

둘째 베날기는 짜야 할 양만큼 실이 준비되면 무명실의 굵고 가늘기에 따라 새가 결정되고 날실의 길이를 필요한 가닥수만큼 정확하게 날실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베날기는 두 명이 하는데, 한 사람은 날틀 앞에 앉아 실을 사침지어 걸고, 한 사람은 날실을 들고 마당을 오가며 사침이 지어지는 날틀과 날실이 걸리는 중간 부분의 말뚝인 걸틀에 차례대로 건다. 1자는 60cm이고 10자는 6m이다. 무명 1필은 20자, 즉 12cm이다. 1새는 80올의 날실이 1새(升) 이며, 10올(1모슴)을 4번 왕복하면 8모슴 1새가 되는 것이다. 10새 무명베를 짜기 위해 40번 왕복하면 80모슴이 되고 날실은 800올이 된다.

셋째 날실 걷기는 베날기가 끝난 1필 날실은 12m 길이여서 엉키기 쉽기 때문에 고리 매듭을 지어 동그랗게 감는 것이다.

날실 익히기는 베매기 전의 날실에 약하게 풀을 먹이는 것이다. 무명실에만 하는 과정이다. 솥에 물을 붓고 물이 펄펄 끓으면 묽은 풀을 쓴 후 고리 매듭으로 감아 둔 날실 꾸러미를 넣는다. 면실이 끓는 물에 잠기도록 담고 방망이로 자근자근 누르고 뒤적인 후 10분 동안 뚜껑을 덮어 익힌다. 솥에서 꺼낸 익힌 날실을 두 사람이 방망이에 끼워 돌려서 물기가 없게 짜 준 다음 고리 매듭을 풀고 잡아당기며 대나무자로 두드려 붙은 실을 떼어내고 검불 등도 제거한다. 다 푼 실은 가지런히 펼쳐 응달에 말린다.

풀을 먹여 거의 마른 날실은 대나무자로 두드려 실올을 정리한다. 베매기 전에 먼저 바디에 날실을 끼우기 위해 사침 부분을 펴고 나머지는 보자기에 싸 둔다. 사침 지은 부분에 참대로 만든 사침대를 끼우고 양 끝을 끈으로 묶는다. 바디에 날실을 끼울 때 바디 1구멍마다 1쌍씩 끼우되, 사침의 위 아래로 구분지어 잉아올과 사올로 나눠 주는 것이다. 바디 끼우기는 베매기 과정에서 바디가 날실의 폭을 일정하게 유지시키고, 올과 올 사이를 고르게 조절하는 빗과 같은 역할을 해 주기 때문이다. 바디에 올을 끼는 작업은 1구멍이라도 빼놓거나 바디 1구멍에 2개의 날실이 끼워지지 않으면 베를 제대로 짤 수 없어 섬세한 주의가 필요하다. 바디 끼우기를 마치면 날실은 사침대에 의해 잉아올과 사올로 각각 구분된다.

베매기는 날실의 보풀이나 표면 잔털을 없애고 마찰에 견디게 하기 위해 표면에 풀을 먹여 도투마리에 거는 과정이다. 베매기 도구로는 들말, 끄싱개, 도투마리, 뱁댕이, 풀솔 등을 준비한다. 들말은 베를 매는 동안 도투마리를 얹어 놓는 틀이다. 끄싱개는 들말 반대편에 놓여서 도투마리에 감긴 날실을 반대편에서 맞잡아 주는 말뚝형 도구이다. 뱁댕이는 대나무로 도투마리에 날실을 감을 때 날실끼리 붙지 않도록 중간중간 끼워 주는 것이다. 풀솔은 속새풀로 만들고 소나무 뿌리로 감아 만들며 단단하고 까슬까슬하다.

첫째 벳불을 준비한다. 들말에서 1자(60cm) 위치에 넓적한 돌을 둥글게 쌓고 왕겨를 수북히 놓고 짚을 얹고 콩대를 올린 후 불을 지핀다. 콩대와 짚이 타 아랫쪽 왕겨가 서서히 타게 한다. 그 옆에 찬재를 준비하여 왕겨불이 세면 찬재를 올려 낮춰 주면서 불을 조절한다.

둘째 풀을 준비한다. 무명은 쌀풀을 알맞은 농도로 만들어 준비한다.

셋째 벳불과 풀이 준비되면, 들말을 벳불 뒤에 갖다 놓고 도투마리를 올려 둔다. 5~6m 떨어진 곳에 끄싱개를 둔다. 바디를 끼운 날실의 한 끝에 톱맞이를 묶고 이것을 20올씩 직물 너비만큼 도투마리에 고정시켜 준다. 이제 날실을 풀어 맞은편 끄싱개에 묶고 그것을 돌로 눌러준 다음, 그 위 바구니에 날실을 담아 얹어 놓는다. 팽팽해진 날실의 표면에 쌀풀을 풀솔에 묻혀 풀을 고르게 바른다. 그보다 20㎝ 정도 아래쪽에 있는 벳불에 고루 바른 풀을 잘 말리고 바디를 옮겨 올의 간격을 바르게 한다. 실은 강도나 탄력이 일정해야 매기 과정에서 끊어지지 않는다. 풀을 바르고 바디를 옮겨서 벳불에 은근하게 말린다. 1자 정도 작업을 하면 도투마리에 뱁댕이를 끼워 감아 준다. 이런 과정을 계속 반복하면 끄싱개 부분이 조금씩 들말쪽으로 끌려오며 그 간격이 점점 좁아진다. 베매기가 끝나 가면 날실의 끝에 대나무 막대를 묶어 준다. 이것은 베틀에 옮겨 1자 정도 짜고 말코에 끼우게 되는 것이다.

씨실은 물레에서 고치를 말아 가락옷에 입힌 뎅이에서 실을 잡아 꾸리로 감는다. 꾸리 감기에 필요한 용구는 길이 12~15cm, 지름 1cm의 대나무 대롱이다. 이는 한쪽 끝이 'V자'로 홈이 파여 있고, '전대'라고도 부른다. 뎅이에서 실 가닥을 잡아 V자형 홈에 걸고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으로는 실이 풀려 나오는 정도를 조절하며 전후좌우 8자로 돌려가며 일정한 부피로 감는다. 꾸리는 북 속에 넣을 정도로 알맞게 감고 마지막 실오리는 북 구멍으로 빼서 베틀 위에서 사용한다.

베짜기에 필요한 도구는 베틀이다. 전통 베틀의 기본 골격은 앞다리, 뒷다리, 누운다리, 가로대이다. 여기에 잉아를 들어 올리는 전동 도구인 용두머리는 앞다리 위에 올려진다. 용두머리 앞에는 양쪽에 눈썹대가 끼워져 있고, 눈썹대에는 눈썹끈이 달려 잉아와 연결되어 있다. 용두머리 뒤쪽으로는 중간에 신나무가 끼워져 있고 신나무 아래쪽은 쇠꼬리로 연결되어 끝에 끌신이 달려 있다.

베틀 위에 매기가 끝나 도투마리를 올리고 날실을 앞에 늘어뜨린 후 잉앗대에 걸 잉아는 고다리에 대나무 2개를 'X자'로 걸고 왼손으로 잡은 다음 잉아올을 잡아 잉아실에 걸고 사울은 그냥 넘기며 잉아올과 사올을 구분한다. 잉아를 다 걸고 잉앗대에 걸고 앉을개에 앉아 개톱대를 말코에 끌어 당겨 부티를 허리에 건다. 베틀신을 신고 앞으로 당겨 잉앗실이 위로 올라가면 그 벌어진 틈에 도투마리 앞쪽 부분에 비거미를 끼우고 누름대도 걸어 준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베짜기를 하기 전에 맨 처음 앞쪽 5줄 정도를 먼저 '가슴내기'를 하는데, 이렇게 하면 날줄이 일정한 간격으로 자리잡게 된다. 가슴내기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베짜기가 시작된다. 잉아올과 사올 사이의 벌어진 틈으로 씨실을 넣은 북을 던지고 나서 끌신을 당겨 곧바로 바디로 쳐서 자리를 잡게 한다. 날실이 상하로 갈려 X자로 벌어지게 되면 그 사이로 북을 던져 넣고 끌신을 끌어 사이를 벌려 바디로 치면서 무명베를 짠다. 무명을 짜는 데에도 적당한 습기가 요구되므로 가끔 젖일개로 날줄의 마른 부분을 적셔 주어야 한다. 무명짜기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짤 수 있다. 짜면서 가로의 폭이 줄어들지 않도록 40.8cm 정도의 최활을 끼워 직물의 폭을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해 준다. 2치 정도 짜면 도투마리를 밀침대로 밀어서 날실을 풀어 준다.

무명짜기가 끝나면 말코에 감긴 직물은 늘어가고 도투마리의 날실을 줄어들면서 바닥에는 끼워 둔 벱댕이가 늘어간다. 마지막에 도투마리에 연결된 톱맞이에 끼웠던 날실의 끝 부분이 드러나 마지막까지 팽팽하게 잡아당기며 직조한다. 다 짜고 나면 직조자는 부테를 맨 상태에서 가위로 짜여진 직물 위쪽으로 약 5cm 정도의 날실 부분을 잘라낸다. 날실이 잘리며 날실에 끼워져 있던 바디와 비거미, 사침대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끝에 남은 날실은 톱은 약 1자 정도이며, 잘 거둬서 노끈 등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

베틀에서 짜낸 무명베는 날실 표면에 풀이 먹여져 있고 짜면서 먼지가 묻어 더러워져 있다. 베짜기를 마치면 풀기를 빼고 세척해서 보관한다. 말코에 말려 있는 무명베를 풀어 하룻밤 동안 물에 담가 불렸다가 잿물에 삶아 내거나, 잿물에 담갔던 무명을 시루에 앉혀 쪄서 햇볕에 바래는 정련 과정을 거쳐야 하얗게 표백된다.

무형유산

전통적인 방식으로 목화에서 실을 자아서 재래식 베틀에 의해 무명베를 짜는 기술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국가에서는 1968년 무명베를 짜는 기능을 지정하기 위한 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1969년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에서 전승되는 무명짜기 기술을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제28호 '나주의 샛골나이'로 지정하였고, 그 기능을 지닌 김만애(1907-1982)를 보유자로 인정하였다. 김만애 사후에 며느리인 노진남(1936-2019)을 보유자로 인정하였고, 1993년 노진남의 동서인 김홍남(1941-2020)을 전승 교육사로 인정하였다. 한편, 경상북도에서는 1990년 경상북도 성주 지방에서 전승되는 무명짜기 기술을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6호 무명짜기로 종목을 지정하였고, 기능 보유자로 지정된 백문기(白文基, 1928-2010)를 인정하였다.

참고문헌

단행본

심연옥, 『나주샛골나이』(국립문화재연구소, 2003)
민길자 외, 『한국민속종합보고서-직물공예편-』(문화재관리국, 1991)

논문

구희경, 「한국전통수직에 관한 연구-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직포 중심으로-」(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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