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언량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정언, 지평, 이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뇌중(賚仲)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57년(효종 8)
사망 연도
1701년(숙종 27)
본관
여흥(驪興, 지금의 경기도 여주)
주요 관직
정언|지평|이조정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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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정언, 지평, 이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뇌중(賚仲). 민응회(閔應恢)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민점(閔點)이고, 아버지는 병조판서 민종도(閔宗道)이며, 어머니는 이만(李曼)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75년(숙종 1) 사마시에 합격, 1689년(숙종 15)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690년(숙종 16) 검열(檢閱), 1692년(숙종 18) 정언(正言)·지평(持平) 등을 거쳐, 순조롭게 홍문관과 한림(翰林)에서 활동하였고, 또 이조정랑(吏曹正郞)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남인인 민언량은 1694년(숙종 20) 갑술옥사로 아버지 민종도 등을 비롯한 다른 남인들과 함께 찬배(竄配)되었다.

그 뒤 1699년(숙종 25)에 풀려나 희빈장씨(禧嬪張氏)의 오빠 장희재(張希載)와 친교하면서 남인의 재기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1701년(숙종 27) 인현왕후(仁顯王后)가 사망하고 국모모해사건의 전모가 드러나 이 사건을 주동한 희빈장씨는 물론이고 장희재와 친교하였던 다른 남인들도 옥사(獄事)에 연루되었다. 이때 민언량은 아버지와 함께 처형되었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집필자
박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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