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응기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왕자사부, 현감 등을 역임하였으며, 『용학석의』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백향(伯嚮)
우수(尤叟), 경퇴재(景退齋)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여흥(驪興, 지금의 경기도 여주)
주요 관직
현감
정의
조선 전기에, 왕자사부, 현감 등을 역임하였으며, 『용학석의』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백향(伯嚮), 호는 우수(尤叟) 또는 경퇴재(景退齋).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65년(명종 20) 왕자의 사부(師傅)가 되어, 선조연간에도 그 직에 머물렀다. 벼슬은 현감에 그쳤으나, 민응기가 가르쳤던 광해군이 1608년 즉위하여 왕자 때의 사부였던 민응기를 하락(河洛)·박광전(朴光前) 등과 함께 추모하면서 제물(祭物)을 내려주었으며, 1610년(광해군 2) 당상관으로 증직하라는 전교가 있어 좌승지로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용학석의(庸學釋義)』가 있다.

참고문헌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집필자
장동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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