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여유(汝有). 부사 박성(朴聖)의 아들이다.
1777년(정조 1) 무과에 급제, 1780년에 선전관이 되었고, 1800년(순조 즉위년) 함경북도절도사, 1807년 황해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811년 홍경래(洪景來)의 난이 일어났을 때 도총부부총관으로 양서순무중군(兩西巡撫中軍) 겸 선봉장이 되어 청천강 이북의 각 고을을 회복하였다.
이듬해 평안도병마절도사를 겸하여 정주성을 네번이나 공격하여 전세는 유리하였으나 박기풍의 성격이 유약하여 규율을 잡지 못하고 모두 실패하였으므로, 홍문관의 탄핵을 당하고 그 대신 유효원(柳孝源)을 교대하여 마침내 파성하게 되었다.
그 뒤 1813년 좌포도대장·경상도병마절도사를 거쳐 1815년 이후 좌우포도대장, 1821년 삼도통제사(三道統制使), 1823년 좌우포도대장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