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식 ()

영화
인물
해방 이후 「5인의 해병」, 「카인의 후예」, 「청일전쟁과 민비」 등에 출연한 배우.
이칭
상당산인(上黨山人)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30년
사망 연도
1995년
출생지
전라남도 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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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5인의 해병」, 「카인의 후예」, 「청일전쟁과 민비」 등에 출연한 배우.
개설

전라남도 순천 출생.

생애 및 활동사항

여수 수산중학교를 거쳐 전남 순천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1950년여수소라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1951년 수도사단 선무공작대에 입대 종군하였다. 그 후 악극단에서 연극 「나그네 설음」에서 첫주연을 하면서 연기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1956년 전쟁영화인 이강천 감독의 「격퇴」로 본격적인 영화배우로 데뷔, 1957년 극영화인 권영순 감독의 「나는 너를 싫어한다」에서 주연을 맡아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그 후 정창파 감독의 액션영화인 「햇빛이 쏟아지는 벌판」으로 이제까지의 멜로영화배우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본격적인 액션영화배우로 활동하였다.

극동영화사의 김기덕 감독의 최무룡·신영균·황해·곽규석 등과 연기한 「5인의 해병」에서 전라도 농군 출신으로 열연하였다. 그리고 1961년 대종상 남우주연상, 1972년 김효천 감독의 「소장수」로 청룡상 남우주연상, 1964년신상옥 감독의 「벙어리 삼룡이」에서 최은희·김진규와 함께 출연하여 부잣집 아들 광식으로 분하여 열연하였다.

신상옥 감독의 「청일전쟁과 민비」로 아시아영화제 최우수 남우주연상, 1967년「메밀꽃 필 무렵」으로 대종상 남우주연상· 청룡상, 1968년 유현목 감독의 「카인의 후예」로 대종상 남우조연상, 1971년「인간 사표를 써라」에서 직접 제작·감독·주연하여 아세아 극장에서 개봉하여 히트하였다.

그 후 「하얀 수염」·「나」·「지프」·「작크를 채워라」·「육군사관학교」·「집행유예」·「왜」·「일생」·「돌아온 용팔이」·「폭력은 없다」 등 13편을 직접 제작·감독하였다. 1980년 3월에 미국으로 이민 갔다가 1983년에 돌아와 「돌아온 용팔이」를 감독하였다.

그외의 출연작품으로는 「나그네 설음」·「사모님」·「모녀」·「남매」·「장마루초의 이발사」 등의 멜로드라마류와 「십대의 반항」·「다이얼 112를 돌려라」·「공포의 8시간」·「상하이 박」·「 마도로스 박」·「사화산」·「늑대들」·「일대일」·「내가 설땅은 어디냐」 등 43년의 영화배우 생활 동안 900여 편의 영화에서 주·조연으로 활약하였다.

제3회 아시아영화제 최우수 남우주연상, 17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 제 2·4·6·7회 대종상, 1961·1964·1965·1967·1972년 청룡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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