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자원(子元).
1460년(세조 6) 무과에 급제, 1467년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나자 이를 평정하는 데 큰 공을 세워 당상관이 되었다.
1473년(성종 4) 오랑캐가 북변을 침범하자 조전장(助戰將)으로 공을 세워 가선대부에 오르고, 그 공으로 1478년 온성도호부사(穩城都護府使)가 되었다. 1481년 공조참판을 거쳐 전라도병마절도사·영안북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486년 영안북도병마절도사로서 오랑캐의 침입을 방어하지 못하고 태만하였다는 이유로 장형에 처해지고 변방으로 충군(充軍)되었다. 이듬해 풀려나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가 되었고, 진향사(進香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후 충청도 수군절도사, 공조참판, 영안남도와 북도의 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1494년에는 지중추부사로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496년(연산군 2) 평안도병마절도사에 이어 경상우도수군절도사를 역임하여 전후 12회에 걸쳐 변방을 지키는 임무를 맡아 국방을 튼튼히 하는 데 공헌하였다. 1498년 65세의 고령임을 들어 수군절도사직을 사임하였으나 다시 공조판서에 임명되었고, 그해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 옮겨 재직 중 죽었다. 시호는 공장(恭莊)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