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 77㎝, 가로 181㎝. 1992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글씨는 조선 후기의 문인서화가 추사(秋史) 김정희가 1856년(철종 9)에 썼다. 판전은 1856년 새겨진 『화엄경(華嚴經)』 목판을 비롯한 여러 경판(經板)을 보관하는 건물인데, 이 현판은 화엄경판의 각성을 봉축하기 위해 쓴 것으로 여겨진다. 김정희는 1852년 북청(北靑) 유배지에서 풀려난 뒤 과천(果川)에 있는 자신의 별서(別墅) 과지초당(瓜地草堂)과 봉은사를 왕래하면서 서예와 신앙생활로 한가롭게 보내다가 1856년 10월 10일에 71세로 별세하였는데, 이 현판은 그가 별세하기 사흘 전에 쓴 것이라고 전한다. 자형이 어리숙하고 점획에 꾸밈이 없는 졸박(拙樸)한 필치인데, 흔히들 동자체(童子體)라고 부른다. 특히 ‘殿’자의 왼삐침을 삐치지 않고 중봉세(中鋒勢)를 유지하여 위아래로 그은 다음 “七十一果病中作(칠십일과병중작)”이란 낙관으로 마무리한 점은 청정무구한 심상(心想)을 드러낸 듯하다. 낙관에서의 ‘果’자는 그가 노년에 썼던 별호(別號)인 과로(果老) · 노과(老果)의 줄임이다. 봉은사에는 이외에도 그가 쓴 대웅전 현판이 있는데 이 또한 꾸밈없는 필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