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삼베 바탕에 채색. 세로 13.2m, 가로 8.07m. 화원인 학능(學能), 탁휘(卓輝), 혜명(惠明), 법란(法蘭), 운식(雲湜), 천율(天律), 선행(善行) 등 7명의 승려가 1688년(숙종 14)에 그렸다. “靈山掛佛一會(영산괘불일회)” 라는 명칭이 쓰여진 이 괘불탱은 정면 석가불 입상을 중심으로 팔대보살(八大菩薩), 십대제자(十大弟子), 범천과 제석천, 사천왕, 4구의 금강(金剛)이 둘러싼 군도(群圖)식 배치 구도이다. 화면에 석가불을 크게 묘사하고 그 좌우 여백에 청중(聽衆)을 일렬로 조그맣게 묘사하여 석가불 입상을 강조했다.
키 모양의 광배(光背: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머리나 등의 뒤에 광명을 표현한 둥근 빛)를 지닌 석가불은 두 어깨를 덮은 통견(通肩: 어깨에 걸침)의 법의(法衣: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를 걸쳤다. 오른손은 내렸으나 짧은 편이고 왼손은 배 앞에 두어 엄지와 중지를 맞댄 손 모양이다. 본존불의 머리는 중앙 계주, 삼각형 모양의 육계(肉髻: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 그리고 그 위에 정상 계주로 장식되었다. 법의의 원문(圓紋)은 특징적이며, 가로와 세로로 교차하는 줄무늬 안의 화문(花紋: 꽃무늬)을 금니로 치장하는 등 옷 문양에 금이 집중되었다.
여의(如意)를 든 문수보살과 연꽃 줄기를 든 보현보살은 측면 전신상이다. 나머지 6구의 보살은 합장한 자세이다. 이마에 눈이 수직으로 묘사된 범천과 반대편의 제석천은 둥근 목깃의 천의(天衣: 천인(天人)이나 선녀의 옷)를 입었다. 석가불의 두광(頭光: 부처나 보살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 주위에는 나이 든 모습의 가섭과 젊은 승려 모습인 아난 등 십대제자가 다양한 복장과 자세, 손 모양을 하고 있다.
이 북장사 괘불탱의 수화사인 학능은 공주 갑사 삼신불괘불탱(1650년)의 제작에도 참여하였다. 북장사 괘불탱은 이후 이 지역에서 유행한 본존을 입상 형식으로 변화시킨 군도식 영산회상도의 초기 작이라는 점에서 주목되는 작품이다. 이와 같이 군도식 영산회상도의 구도에 석가불만을 서 있는 형식으로 표현한 예는 문경 김룡사 영산회괘불도(1703년)에서 발견할 수 있다. 폭이 좁아진 화면에 수직으로 서 있는 석가불은 좁아진 어깨폭으로 인해 경직된 것처럼 보인다.
학능은 구도, 형태, 색채, 문양, 장식 등에서 독자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주황에 가까운 적색과 광배 등에 사용된 녹색은 갑사 삼신불괘불탱과 유사하나 불신(佛身)은 흰색으로 처리되었다. 17세기 중엽 괘불탱과는 달라진 특징으로 석가불의 내의에 묘사된 모란문과 법의의 원문 등을 들 수 있다.
한편 혜명은 영천 수도사 노사나괘불탱(1704년)의 제작에도 참여한 화원이다. 창백한 둥근 얼굴 및 차분하면서 부드러운 파스텔톤의 채색법이 유사하다.
수많은 신도와 승려 등이 안료의 비용을 분담한 이 괘불탱은 구도와 형태, 채색, 장식적인 면에서 새로운 특징이 대두된 작품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