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구전에 의하면, 이 동리에 세거한 순흥안씨밀직공(密直公)안석(安碩)이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향리에 묻혀 세 아들 문정공 축(文貞公 軸), 문경공 보(文敬公 輔), 좨주공 집(祭酒公 輯)을 훌륭히 키우면서 함께 사용하였던 우물이라 한다.
조선 인종 원년(1545)에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이 우물에 대한 내력을 알고 이곳에 사현정이라는 비를 세우고 네 분의 덕을 기리게 하였다.
그 후 1636년(인조 14)에 안응창(安應昌)이 현존하는 비각 내의 비명을 쓰고, 1821년(순조 21)에 안성연(安性淵)이 현 비각을 세웠다고 한다.
우물 깊이는 약 4m 정도이고, 지상에는 화강암 각석을 井자형으로 3단 조립하였는데, 높이가 70㎝이고 폭은 1m의 정방형을 이루고 있다. 비는 우물 뒤편에 있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비각 안에 보호되어 있다.
비의 재질은 화강암이고 높이 1m, 폭이 43㎝, 두께가 16㎝인데, 비문의 표면에는 ‘四賢井’이라 썼고, 뒷면에는 ‘高麗安先生碩 生子 軸 輔 輯 卽所謂四賢 此其舊井 玆植表庸 示後 崇禎丙子立(고려안선생석생자축보 집즉소위사현차기구정자식표용시후숭정병자입)’이라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