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고려 충숙왕 때 창건되어 객관으로 활용되었으며, 그 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1639년(인조 14)왕산 남쪽에 이축하였고, 1940년상주여자중학교로 이건하였다가, 최근에 다시 현재의 만산동으로 옮겨 세웠다.
평면은 정당의 정면이 3칸, 동익사 4칸, 서익사 7칸과 각 건물 사이를 띄운 1칸씩 모두 16칸이고, 측면은 세 건물 모두 3칸이다. 정당은 정면을 제외한 3면을 벽체로 막았으며, 동익사는 배면을 제외하고 개방시켰는데,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다.
서익사는 좌측 3칸에는 온돌방으로 꾸몄고, 나머지는 우물마루에 벽체 없이 개방시켰다. 자연석 덤벙주초에 기둥은 외부의 평주는 모두 원주이며, 내부는 원주와 각주를 혼용하였고, 정당의 기둥은 동 · 서익사보다 2척 정도 높아 지붕 높이가 한 단 높다.
정당은 2익공이고 동 · 서 익사는 초익공이며, 가구는 7량가에 연등천장이다. 지붕은 정당이 맞배지붕, 동 · 서단만 팔작지붕으로 2단 층을 이룬 겹처마이고, 지붕마루 끝에는 용두(龍頭) 14개가 빠짐없이 놓여져 있다.
창건 이후 수 차례의 중건과 이건 등으로 변형이 있었으나 지방 관아건물 중 규모의 장대함과 지붕에 용두가 잘 남아 있어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