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집. 1992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한말의 유학자 연재(淵齋)송병선(宋秉璿)이 1886년(고종 23)에 건립하였다.
이 일대는 천연의 절경을 이루어 예부터 많은 선비들이 즐겨 찾았으며 주자(朱子)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떠 각 계곡을 무계구곡(武溪九曲)이라 명명하고 아홉 군데의 명소마다 명칭을 붙였다.
서벽정은 그 중 제4곡인 일사대(一士臺)에 위치한다. 본래 수성대(水城臺)라 부르던 곳인데, 송병선이 이곳에 정자를 짓고 후진을 양성할 때 이 고장 사람들이 그의 학리(學理)를 보고 ‘동방에 하나밖에 없는 선비’라 하여 동방일사(東邦一士)라는 별호를 붙이고 그가 사는 곳이라 하여 일사대(一士臺)라 했다고 한다.
송병선은 송시열(宋時烈)의 9세손으로,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수일을 단식하고 왕에게 소를 올리려다 고향인 대전 석남촌에 강제 이송되고 말았다. 이에 그는 망국의 울분을 참지 못하고 음독 자결하였다. 그가 조선 말의 세태를 비관하며 은둔생활을 할 때 이곳을 찾아와 수려한 산수에 반해 지은 정자가 서벽정이다.
평면은 중앙 2칸이 마루이고, 마루 좌측에는 전면에 툇마루를 둔 한 칸 반 크기의 방을 들였으며, 우측 칸은 전면을 한 단 높게 하여 누마루같이 구성하고 뒤쪽에 방을 만들었다. 전체적인 평면의 형식이 정자라기보다 서원의 강당형식과 같다.
정면은 칸마다 모두 4짝 띠살 분합문을 시설하였고, 방과 청(廳) 사이에도 분합문이 있어 필요할 때 하나의 공간으로 터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정자 안에는 1897년 그의 제자인 무주군수 조병유(趙秉瑜)가 봉안한 주자(朱子)와 송시열의 초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