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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산휴암리선사유적지(瑞山休巖里先史遺蹟址)

    선사문화문화재 | 유적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휴암리에 있는 신석기·청동기시대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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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휴암리에 있는 신석기·청동기시대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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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8년부터 70년까지 4차에 걸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발굴하였다. 유적은 2개 지점으로 이루어졌고 1지점은 해미 휴암리, 2지점은 고북 용암리에 속한다. 두 지점은 400m 거리를 두고 같은 능선 위에 있으나 행정구역이 다르다. 유적 발굴조사에서 집자리(住居址) 11기, 돌무지 무덤으로 생각되는 유구 1기, 그리고 성격을 분명히 알 수 없는 돌깐시설(敷石施設) 1기가 나왔다.
    휴암리의 부석시설은 원래 청동기시대의 움집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찾아졌는데, 크기는 20∼40㎝ 가량되는 돌들을 암반층 위에 깔았으며 그 위에 10∼20㎝ 두께로 연갈색의 부식토층이 깔려 있다.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는 깐돌 틈에서 발견된다. 부석의 전체 규모는 동∼서 20m, 남∼북 16m 정도이며, 가운데 부분은 집자리로 인해 돌이 깔려있지 않았다. 출토된 빗살무늬토기는 무늬로 볼 때 찍은무늬와 새김무늬로 나뉜다. 입술 가까운 부분에 점열문(點列文)을 찍어놓은 토기가 가장 시기가 올라갈 것으로 여겨지는데, 여기에는 특히 활석(滑石)과 석면(石綿) 비짐이 많이 들어있다고 한다. 이렇게 동심원을 그리면서 찍어놓은 점열문이나 석면, 활석 비짐들은 서해안의 지탑리 및 암사동 등지에서 자주 발견되는 특징들이다. 나머지는 비교적 정연한 느낌이 적은 생선뼈무늬(魚骨文)를 새긴 것들이다.
    그밖에 1호 및 6·7·8호 집자리와 지표조사를 통해 많은 빗살무늬토기들이 찾아졌는데, 무늬는 모두 생선뼈무늬를 새긴 것으로서 대체로 ‘시도식’으로 분류될 수 있겠으며, 그 시기는 이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석기는 대부분 간석기(磨製石器) 계통이기 때문에 모두 청동기시대의 유물로 분류되었으나 빗살무늬토기가 혼재되어 있었던 만큼, 신석기시대의 석기들이 섞여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빗살무늬토기가 나왔던 1·6·7·8호 집자리의 석기들은 주의를 요하는데, 이 가운데 신석기시대부터 만들어지던 간돌화살촉(磨製石鏃)과 돌도끼(石斧) 반달돌칼(半月形石刀) 등은 빗살무늬토기와 공반했을 가능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발굴자들은 휴암리의 부석시설을 평양 청호리, 춘성 내평리 등지의 이른바 집자리 시설로 여겨지는 것들과 비교하고, 한편 시도, 부산 동삼동과 금곡동 율리, 욕지도, 연대도 등의 무덤으로 여겨지는 시설들과 비교한 뒤 휴암리의 것이 구릉의 정상부에 있고 화덕자리(爐址)가 발견되지 않는 점 등을 들어 무덤으로 추정하였다. 크기로 보아 개인무덤 보다는 집단무덤으로 생각하고 있다.
    청동기시대 집자리 구조를 보면 집자리 바닥 가운데 긴축(長軸)을 따라 타원형구덩이를 파고 그 양끝 부분에 기둥구멍(柱孔)을 만들었다. 이와 같은 형식은 부여 송국리(松菊里), 광주 송암동(松岩洞), 영암 장천리(長川里) 등 한반도 서부지역과 거창 대야리(大也里), 임불리(壬弗里) 등 중부 내륙지방에서도 나타나는 것으로 송국리형집자리와 같은 형식이다. 다만 휴암리 유적의 경우에는 집자리 평면이 타원형으로 다른 유적과 시기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집자리 11기 가운데 6호 집자리에서는 바닥에 진흙을 깔고 다진 흔적이 보인다. 1호 집자리 내부에는 북벽에 연접하여 바닥보다 30㎝ 정도 높여, 너비 90㎝ 정도의 한단 높은 시설을 만들어 물건을 놓아 둘 수 있게 하였다. 9호 집자리는 중앙부에 기둥구멍이 없고 집터 바닥에 무질서하게 기둥구멍들이 있어 작업장으로 보여진다. 집자리 크기는 4.14㎡∼28.8㎡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평균 20㎡ 크기가 주류이다. 청동기시대 집자리 평면구조는 3가지가 있어 평면 장방형(長方形)에서 타원형(橢圓形)을 거쳐 원형(圓形)으로 발전해 간 것으로 생각되는데, 집터 중앙에 중심기둥 2개를 세우는 지붕구조에서 해미(海美) 유적은 가장 이른 시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출토유물은 먼저 토기에서 민무늬토기 바리(鉢), 목긴항아리(長頸壺), 사발, 잔 등이 있다. 붉은간토기(紅陶)도 있는데 그릇 형태는 목긴항아리가 대부분이고, 바리에 붉은 칠을 한 토기 조각도 있다. 석기로는 돌화살촉(石鏃), 돌도끼, 돌칼(石刀) 등 무기류(武器類)와 대팻날, 갈판(碾石), 숫돌(砥石), 가락바퀴(紡錘車) 등의 생활연모와 함께 반달돌칼과 같은 농경도구(農耕道具)들도 있고, 목걸이 장식으로 볼 수 있는 장신구도 나왔다. 집자리의 구조와 유물을 통해 본 유적의 연대는 부여 송국리 유적보다 한 단계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한국고고학사전  (국립문화재연구소, 2002)

    • 『휴암리(休岩里)』 ( 윤무병 외,『국립박물관고적조사보고(國立博物館古蹟調査報告)』22,국립중앙박물관,1990)

    • 한국사 1  (국사편찬위원회, 1974)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윤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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