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성묵(聖默), 호는 구계(龜溪). 아버지는 정당문학(政堂文學) 서균형(徐均衡)이며, 어머니는 승동정(承同正) 이영유(李永儒)의 딸이다.
정몽주(鄭夢周)를 따라 학문을 배웠고, 고려 말 조선 초의 변혁기에 향리에서 은거하여 학문연구에 노력하였다.
세종대에 서씨 일문(徐氏一門)의 근거지였던 달성을 경상도의 요새로 삼고 성을 쌓기 위해 서침의 땅과 바꾸게 하자 이에 협조하여 포상을 받게 되었는데, 서침은 포상 대신에 환자[還上]의 모곡(耗穀: 세곡을 되돌려 받을 때 운반이나 동물의 해로 손실되는 양을 추가한 양)을 감하여줄 것을 건의하여 허락받았다.
이로 인하여 인근주민의 추앙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국가로부터 남산의 옛 역(驛)터와 연신지(蓮信池)와 신지(新池) 등이 하사되었고, 관료로 탁용되게 되었다. 1433년(세종 15) 첨지중추원사가 되었고, 전의소감(典醫少監)을 거쳐, 다음 해에 전라도처치사가 되었다. 대구의 구암서원(龜巖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