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로음(于老音)이라고도 한다. 내해이사금의 아들이다. 각간(角干) 수로(水老)의 아들이라는 설도 있다. 흘해왕의 아버지이며, 부인은 조분왕의 딸 명원부인(命元夫人)이다.
209년(내해이사금 14) 포상팔국(浦上八國)이 가야를 침공해오자 이벌찬(伊伐飡) 이음(利音)과 더불어 가야를 구원해주었으며, 231년(조분왕 2) 감문국(甘文國)을 정복하였고, 233년 침입해온 왜인을 섬멸하는 등의 무공을 세웠다. 244년 이찬(伊飡)에서 서불한(舒弗邯)으로 승진되면서 병마관계의 일을 주관하였다.
245년 고구려가 침입해오자 북변에서 막으려 하다가 실패하여 마두책(馬頭柵)까지 후퇴하였으나, 부하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사기를 진작시켰다. 247년(점해왕 1) 신라의 세력권내에 있던 사량벌국(沙梁伐國)이 배반하여 백제와 결합하려고 하자 토벌하여 멸망시켰다.
253년 왜의 사신을 접대하면서 왜의 왕과 왕비를 가리켜 희롱한 것이 화근이 되어 왜인의 침입을 초래하였으나, 왜의 진영에 스스로 가서 책임을 지고 죽임을 당함으로써 왜군을 물러가게 하였다.
그의 부인은 남편의 원수를 갚기 위해 신라에 온 왜국의 사신을 죽였고, 이 때문에 왜인이 금성(金城)을 침공했다. ≪삼국사기≫에서 전하는 이와 같은 석우로에 관한 기사는 원래 계절풍을 이용한 왜구의 침범이 잦았던 동해안의 우유촌(于柚村)지역에 퍼져 있던 민간전승이었는데, 뒤에 신라왕족의 영웅설화로 변개, 확대되어 정리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