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5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1980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교남지(嶠南誌)』 성주편에는 객관으로 사용된 것으로 나타난다.
임진왜란 때 관아건물이 전소되자 1608년(선조 40)에 목사 송영구(宋英耉)가 수리하고 그 관아의 동쪽에 사시헌(四時軒:목사관사)을 지었다. 그리고 1657년(효종 8)에 목사 최계훈(崔繼勳)이 지금의 군청자리에 관아와 사시헌을 이건하였다.
그 후 수차례의 보수를 거쳐, 6·25 임시 군청사로 사용되다가 1981년에 군청사 바로 뒤에 복원되었다. 방형의 토석 담장을 돌린 일곽 중앙에 동향하여 자리잡고, 전면에 일각문을 두어 출입케 했다.
전면은 돌기둥에 통주를 세워 누마루처럼 꾸몄고, 좌측 3칸은 대청으로 우측 2칸은 앞쪽에 반칸 툇마루를 두고 온돌방을 시설하였다. 기단은 장대석 화강석쌓기에 기둥은 원주를 세웠는데, 온돌방의 전면과 우측면에는 각주를 세웠다.
가구는 5량가로 대량 위에 동자주(童子柱 : 세로로 세운 짧은 기둥)를 세워 종량을 놓았고, 종량 위는 제형 판대공을 두어 종도리를 받쳤다. 성주지역의 역사가 함축된 군내 유일한 관아건물의 일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