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문명(文明), 호는 송재(松齋). 김제 출신. 여성위(礪城尉) 송인(宋寅)의 7세손이다.
1669년(현종 10)에 사마시에 합격, 1682년(숙종 8) 천거로 북부참봉(北部參奉)에 제수되었다. 그 뒤 여러 관직을 거쳐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를 지내고 사직하였다. 82세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1715년에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이 되었다.
김제 벽골제(碧骨堤) 둑이 무너져 전답이 침수되자 수령·방백(方伯: 관찰사의 다른 이름)의 도움을 얻고 사재를 털어 이를 수리하였다. 때문에 송일중을 송공구(宋公渠)라 불렀다. 서예에 능하여 초서·예서·대자(大字)가 뛰어나 숙종과 청나라 강희제(康熙帝)의 찬탄을 받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