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길원(吉遠), 호는 영계(瀯溪). 증좌통례 신후경(愼後慶)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영명(愼榮命)이고, 아버지는 신우장(愼友張)이며, 어머니는 평시령(平市令) 김제(金濟)의 딸이다. 이이(李珥)·박순(朴淳) 등과 교유하였다.
1543년(중종 38) 진사시에 합격한 뒤 선무랑(宣務郎)이 되고, 1555년(명종 10)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70년(선조 3) 수찬(修撰)·장령(掌令) 등을 거쳐, 종부시정(宗簿寺正)이 되어『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어 부교리·사간·교리(校理)·집의(執義)·좌승지 등을 지냈다.
1576년 강원도 관찰사로 나갔다가 다시 내직으로 들어와 병조·예조의 참의를 역임하였다. 1581년에는 극심한 동·서의 붕당을 싫어하여, 자청해서 금산군수로 나갔다가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내려가 여생을 마쳤다. 성품이 후덕하고 근면·온화하였으며, 시와 글씨에 뛰어나 한호(韓護)에게 서예를 가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