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516년(중종 11)에 원정(圓亭 )여희림(呂希臨)이 향토제자들에게 여씨향약(呂氏鄕約)을 강론하기 위해 창건한 것으로 1664년(현종 5)에 현손인 성암(聖巖) 효증(孝曾)이 이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방형 대지 주위에 토석담장을 쌓고 남측 중앙에 솟을대문을 세운 대문채를 들어서면 넓은 마당을 두고 북측에 남향하여 월회당이 있고, 그 전면의 좌·우에 전사청(典祀廳)과 관리사가 대향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튼 ㅁ자를 이루고 있다.
월회당은 정면 7칸, 측면 1칸인데, 중앙부 3칸은 대청으로 우물마루를 깔았고, 대청 좌우에는 각각 2칸통의 온돌방을 두었다. 자연석 막돌 허튼층쌓기한 기단에 자연석 초석을 놓았으며, 기둥은 대청의 전후열만 원주이고 나머지는 각주를 세우고, 기둥위에는 초익공으로 꾸몄다.
대청의 상부가구는 3량가이고,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전사청은 서향의 3칸 一자 건물로 중앙 마루 1칸을 중심으로 좌측에 마루방으로 꾸민 책방 1칸과 우측에 온돌방 1칸으로 꾸몄다. 관리사는 동향의 4칸一자 건물로 중앙 2칸은 통칸 온돌방, 우측에는 마루 1칸, 좌측은 부엌 1칸으로 꾸몄다.
대문채는 3칸 一자 건물로 중앙 1칸이 솟을대문이고 좌우에는 고방 1칸씩을 배치하였다. 건물의 배치나 공간구성은 창건 당시의 기능을 잘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후대에 보수 등으로 구조양식은 변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