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선여(善汝), 호는 보산(甫山). 강원도 춘천 출신. 유건(柳謇)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정한(柳鼎漢)이다. 아버지는 동몽교관(童蒙敎官) 유관(柳瓘)이며, 어머니는 이인수(李演守)의 딸이다. 호조참판 유서(柳瑞)에게 입양되었다.
유학으로 1819년(순조 19)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종묘서직장이 되고, 1820년에는 사도시주부·병조좌랑·사헌부지평을 역임하였다. 이듬해에는 병조좌랑을 거쳐 자인현감으로 나갔으며, 1826년에는 사간원정언을 역임하였다.
1828년에는 전적(典籍)을 거치고 1831년에는 세자시강원필선·사서, 사간원정언이 되었다. 1834년에는 군자감정을 거쳐, 은산현감을 지냈다. 이어 1838년(헌종 4)에는 정언을 거쳐 봉상시정이 되고, 1840년에는 통정대부에 승계되었다.
이듬해에는 강릉부사를 거쳐, 1845년 승정원동부승지를 역임하고, 1848년에는 안변부사 등을 지냈다. 철종 즉위년에서 고종 1년까지 15년간에 동부승지 세번, 공조참의 한번, 사간원대사간을 역임하였으며, 1866년(고종 3)에는 공조참판 겸 오위도총부부총관에 이르렀다.
병인양요 때는 이항로(李恒老)의 척화주장에 찬동하였다. 이항로의 문인으로서 유중교(柳重敎)·이준(李埈)·박경수(朴慶壽)·이박(李璞)·최익현(崔益鉉) 등과 교유하였다. 저서로는 『보산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