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晋州)이다. 검교첨의평리 개성윤(檢校僉議評理開城尹) 유우(柳玗)의 손자로, 삼중대광 진천군(三重大匡晉川君) 유지정(柳之淀)의 아들이며, 시랑평장사(侍郎平章事) 김승제(金承濟)의 외손자이다.
1360년(공민 9) 10월 20세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하고, 1365년 6월 감찰지평이 되었다. 1384년(우왕 10) 4월 북방에 이민족이 침략할 것 같다는 정보가 있자 전밀직(前密直)으로서 판밀직(判密直) 강서(姜筮), 당산군(唐山君) 홍징(洪徵), 전밀직 정몽주(鄭夢周) 등과 함께 동북면에 파견되어 사정을 정탐하였다.
1389년(창왕 1) 9월 판개성부사로서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후덕부윤(厚德府尹) 이종학(李種學)과 더불어 과거를 관장하여 김여지(金汝知) 등 33인을 선발하였으며, 1392년(공양 4) 4월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양경(良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