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윤여필(尹汝弼)

조선시대사인물

 조선전기 판돈녕부사을 역임한 문신.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윤여필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조선전기 판돈녕부사을 역임한 문신.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본관은 파평(坡平). 아버지는 참판 윤보(尹甫)이며, 중종 비(妃) 장경왕후(章敬王后)의 아버지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 때 죄인 윤필상(尹弼商)의 족친이라 하여 유배되었으며, 1506년의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정국공신(靖國功臣) 3등에 녹훈되었다.
이듬해 딸이 숙원(淑媛)에서 왕비로 책봉되어, 파원부원군(坡原府院君)에 봉해지고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가 되었다. 1527년(중종 22) 동궁 내에 저주하는 물건이 나온 것을 우의정 심정(沈貞)에게 알려 조사하게 하였고, 그 뒤 아들 윤임(尹任)과 함께 세자(후일의 인종)의 보호에 진력하면서 윤원형(尹元衡) 등의 소윤과 대립하였다.
1545년(명종 즉위년) 을사사화로 아들 윤임은 사사(賜死)되었으나, 80세의 노령에다 선후(先后)의 아버지이므로 특별히 용인에 부처되었다가 1551년(명종 6)에 풀려났다. 사후에 복관되었으며, 시호는 정헌(靖憲)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7년)
정만조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