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해사 괘불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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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은해사 괘불탱
영천 은해사 괘불탱
회화
유물
국가유산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은해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괘불탱.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은해사 괘불탱(銀海寺 掛佛幀)
분류
유물/불교회화/탱화/불도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1997년 08월 08일 지정)
소재지
경북 영천시 청통면 청통로 951, 은해사 (치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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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은해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괘불탱.
내용

199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750년(영조 26)에 보총(普摠)과 처일(處一) 두 화원(畵員)이 그렸다. 정면 불입상이 큰 화폭에 표현된 그림이다.

하단부의 연못에는 연봉오리와 황금색의 꽃술이 탐스러운 연꽃, 중단부는 모란과 연꽃 다발이 산화(散花)하는 모습, 상단부에는 영락(瓔珞: 구슬을 꿰어 만든 장신구)이 화려한 보개(寶蓋) 주위로 모란 혹은 연꽃을 문 여섯 마리의 봉황새 등 배경이 설명적이다.

원형 두광(頭光: 부처나 보살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을 지닌 불상은 두 어깨를 덮은 통견(通肩: 어깨에 걸침)의 법의(法衣: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를 걸쳤다. 그리고 오른손은 내리고 왼손은 가슴 앞에 두어 엄지와 중지를 맞댄 손 모양이다. 높은 육계(肉髻: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에 둥근 정상 계주(頂上髻珠)가 장식된 머리 모양이다.

반개(半開)한 눈과 작은 입의 얼굴 표정은 온화하다. 묵직한 법의에는 가로와 세로로 교차하는 줄무늬 안에 변형된 국화문이 빈틈없이 금으로 표현되어 있다. 적색과 녹색 위주이며 갈색, 하늘색, 감색 등 밝고 화려한 채색이 돋보인다.

붉은 테를 두른 화면 밖의 외연은 살색 바탕에 호분(湖粉: 흰 가루)으로 연당초 문양을 찍어낸 듯한 목판화의 효과를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연속 문양 기법은 법의에도 사용되었다. 이 외연대 밖에도 좌·우에 각 33개의 원과 상(上)에 15개의 붉은 원 안에 범자(梵字)를 굵은 황색으로 한 자씩 써넣었다. 이 괘불탱에서 본격적인 범자 문양대가 나타나는데, 18세기에는 범자문 장식이 매우 성행하였다.

포(布)가 비칠 정도로 경쾌한 갈색의 밑바탕 칠에, 신체나 옷 등 질감의 변화에 따라 담채(淡彩: 엷은 채색)와 진채(眞彩: 진하고 강하게 쓰는 채색)를 병용하여 형상을 강조하였다. 괘불탱으로는 드물게 비단을 바탕 재료로 사용했기 때문에 삼베 바탕보다는 적과 녹색 등이 더 선명하고 우아하게 발색되었다.

연꽃이 만발한 연못에 서 있는 불상 주위로 극락새가 날고 꽃비가 내리는 신비한 불토(佛土)를 나타낸 배경 묘사는 독존 입상이 성행하는 18세기 괘불탱에 유행하였던 요소이다. 배경에 산화하는 꽃을 묘사한 예로 1684년 작 율곡사 괘불탱, 1725년 작 청량사 괘불탱을 들 수 있다.

권속이 축소된 영산회상도 괘불탱 중 석가모니불만을 배치한 독존 형식 괘불탱으로는 1622년 작 죽림사 괘불탱, 1673년 작 천은사 괘불탱이 있으며 18세기에는 특히 성행하여 1727년 작 미황사 괘불탱, 1753년 작 선암사 괘불탱, 1772년 작 개심사 괘불탱 등이 있다.

참고문헌

『동산문화재지정보고서』96-97 지정편(문화재관리국,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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