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한국 현대 시조의 중흥을 이룩한 시조 시인이며 국문학자였던 이병기가 태어난 집이다. 안채와 사랑채, 고방채, 정자 등 여러 채의 초가로 이루어져 있다.
입구에는 승운정(勝雲亭)이라는 1칸 규모의 모정[茅亭 : 집 · 새 따위로 인 정자]이 있고, 그 옆으로 사랑채를 길게 배치한 후 앞에 작은 연못을 파 놓았다. 사랑채는 一자집이다.
전후 퇴집의 구조로서 전면은 툇마루를 구성하고, 안마당에 면한 툇간은 골방과 창고, 다락 등 수장 공간으로 사용한다. 칸살은 동쪽부터 방 · 부엌 · 방 · 방 · 대문간 및 헛간 순으로 이루어졌다.
진수당(鎭壽堂)이란 편액이 붙은 끝 방은 가람이 책방으로 사용했으며, 평소 기거하던 곳은 한 칸 건너 수우재(守愚齋)라는 편액이 붙은 방이다. 수우재와 책방사이는 칸 전체를 다락으로 만들었다. 밑은 양측 두 방 모두 구들에 불을 지필 수 있는 아궁이를 만들고 그 위 공간을 이용하여 다락을 만든 것이다.
대문간을 들어서면 좁은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안채와 마주하게 된다. 안채는 호남 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ㄱ자 집으로서 잡석 축대 위에 높은 자연석 초석을 사용해 비교적 높게 지었다. 대청을 사이에 두고 안방과 건넌방이 마주하며, 안방 전면으로 부엌이 돌출한 형태다.
건넌방은 전면과 측면에 툇마루를 시설했는데 전면 툇마루는 대청마루 보다 높게 구성해 마루 밑에 아궁이를 만들며 입면(立面)에 변화를 준다. 또한 윗방 한쪽은 칸을 막아 찬방을 두었으며, 아랫방 뒤쪽에는 쪽마루를 달아 고방채와 장독대가 있는 뒷마당에서의 출입을 배려하였다. 3칸의 고방채는 광 · 헛간 · 안변소로 이루어졌다.
고졸하고 소박한 초가의 모습에서 담백한 선비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이 곳에서 가람은 한국 문학사에 뛰어난 족적을 남기고 말년을 맞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