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빈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예조정랑, 합천군수, 고양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방숙(芳叔)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50년(명종 5)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완산(完山)
주요 관직
예조정랑|합천군수|고양군수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예조정랑, 합천군수, 고양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완산(完山). 자는 방숙(芳叔). 청풍군(淸風君) 이원(李源)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화림정(花林正) 이단(李檀)이다. 아버지는 흥고수(興古守) 이경천(李敬千)이며, 어머니는 윤희안(尹希顔)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89년(선조 22)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94년(선조 27)에 접반관(接伴官)으로서 호참장(胡叅將)에게 줄 대답은 매우 중대하므로, 미리 조정에서 논의하여 정해놓지 않으면 안된다고 할 정도로 치밀하였다.

1597년(선조 30) 여산군수(礪山郡守)로서 왜군을 피하여 관아를 버리고 도망하였다가 되돌아 간 죄로 징계를 받았으나, 죄를 영서하고 사면시켜 공을 세우게 하는 것이 옳다는 비변사의 논의에 따라 복관되었으며, 1599년(선조 32) 예조정랑을 거쳐 정언·지평·장령·필선·헌납·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1602년(선조 35) 합천군수(陜川郡守)로 있을 당시 이귀(李貴)가 거창(居昌)을 지나면서 합천에 공문을 보내어 정인홍(鄭仁弘)의 죄목을 열거한 것으로, 의령(宜寧)의 진사인 오여온(吳汝穩)이 상소한 것으로 인하여 이를 추문 이첩(移牒)하였다.

그 뒤 직강(直講)·고양군수(高陽郡守)·사직·교리·부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사직으로 있을 당시 『선조실록(宣祖實錄)』의 편수관으로 참여하였으며, 1610년(광해군 2) 장령으로 있을 때는 광해군 자전(慈殿)의 배릉 참배논의가 조정에서 일자, 조정의 예는 엄한 것을 주로 하는 것이지 감정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고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국조방목(國朝榜目)』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