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완산(完山). 자는 방숙(芳叔). 청풍군(淸風君) 이원(李源)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화림정(花林正) 이단(李檀)이다. 아버지는 흥고수(興古守) 이경천(李敬千)이며, 어머니는 윤희안(尹希顔)의 딸이다.
1589년(선조 22)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94년(선조 27)에 접반관(接伴官)으로서 호참장(胡叅將)에게 줄 대답은 매우 중대하므로, 미리 조정에서 논의하여 정해놓지 않으면 안된다고 할 정도로 치밀하였다.
1597년(선조 30) 여산군수(礪山郡守)로서 왜군을 피하여 관아를 버리고 도망하였다가 되돌아 간 죄로 징계를 받았으나, 죄를 영서하고 사면시켜 공을 세우게 하는 것이 옳다는 비변사의 논의에 따라 복관되었으며, 1599년(선조 32) 예조정랑을 거쳐 정언·지평·장령·필선·헌납·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1602년(선조 35) 합천군수(陜川郡守)로 있을 당시 이귀(李貴)가 거창(居昌)을 지나면서 합천에 공문을 보내어 정인홍(鄭仁弘)의 죄목을 열거한 것으로, 의령(宜寧)의 진사인 오여온(吳汝穩)이 상소한 것으로 인하여 이를 추문 이첩(移牒)하였다.
그 뒤 직강(直講)·고양군수(高陽郡守)·사직·교리·부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사직으로 있을 당시 『선조실록(宣祖實錄)』의 편수관으로 참여하였으며, 1610년(광해군 2) 장령으로 있을 때는 광해군 자전(慈殿)의 배릉 참배논의가 조정에서 일자, 조정의 예는 엄한 것을 주로 하는 것이지 감정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고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