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태징(台徵), 호는 용계(龍溪). 이공달(李公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문성(李文誠)이다. 아버지는 병마절도사 이제신(李濟臣)이며, 어머니는 상붕남(尙鵬南)의 딸이다.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1589년(선조 22) 사마시를 거쳐, 이듬해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에 추천되었다가 주부·감찰·호조좌랑을 역임하고, 외직으로 나아가 통진현감이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부녀자와 선비 및 양식을 통진에서 강화도로 보냈다.
그 뒤, 우성전(禹性傳) 등과 함께 경외(京外)에 흩어진 군졸들을 모아 왜적을 방어하고, 통진현을 안전하게 지키는 데 공을 세웠다. 1593년 예조정랑에 제수되었으며, 장악원첨정을 거쳐, 1595년 영해부사로 나아갔다. 1599년 강화부사·봉상시첨정·성균관사성·사헌부장령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외직으로 종성·강계·나주·광주(光州) 등의 부사와 목사를 제수받았으나 부임하지 않고, 그 뒤 사복시정(司僕寺正)·승문원판교(承文院判校)·길주목사·영흥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606년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승문원판교로서 춘추관편수관을 겸하여 임진왜란 때 소실된 실록을 중인(重印)할 때 참여하였다. 이 해에 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던 중 영평(永平)에서 병을 얻어 이듬해 봉산관(鳳山館)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