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무백(茂伯), 호는 수암(壽菴). 좌참찬 이준민(李俊民)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종훈(李從訓)이고, 아버지는 이직경(李直卿)이며, 어머니는 이우(李佑)의 딸이다.
1635년(인조 1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44년에 정언(正言)과 사서(司書)를 지냈다. 1649년에는 세자가 심양으로 갈 때 노모 봉양을 이유로 세자 호송을 거부하였다가 인조에 의해 미움을 받아 관직 생활이 순탄하지 못하였다.
1660년(효종 1)에는 장령(掌令)을 제수받았다. 1655년에는 장령과 필선(弼善)을 역임하다가, 서장관(書狀官)으로서 동지 겸 사은사(冬至兼謝恩使)로 청나라에 다녀 왔는데, 정사(正使)는 금림군(錦林君) 개윤(愷胤)이었고 부사(副使)는 이행선(李行善)이었다.
귀국 후에는 금림군이 청나라에 체류하고 있을 때에 국가의 허락을 받지 않고 정문(呈文)을 작성하여 딸의 소환을 청국의 조정에 주청한 일이 조정에 알려지자, 그는 이에 연루되어 관직을 박탈당한 뒤 사대문 밖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이듬해에는 장령(掌令)과 정언을 지냈고, 1662년에는 장령을 역임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장령과 헌납(獻納)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