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선명(善鳴), 호는 약봉(藥峰). 현감 이굉식(李宏植)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현감 이맹희(李孟禧)이고, 아버지는 군수 이창형(李昌亨)이며, 어머니는 박유(朴維)의 딸이다.
1531년(중종 26) 진사시에 합격하고 1535년 별시 문과에 급제, 1544년 정언을 거쳐 지평을 역임하였다. 1546년(명종 1) 이조정랑을 거쳐 사인(舍人)·집의가 되어 1548년 권신 이기(李芑)를 탄핵하였으며, 사재감첨정(司宰監僉正)·교리·전한을 역임하였다.
1550년 춘추관기주관으로서 『중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552년 동부승지·좌부승지가 되었으며 이듬해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가 되어 진헌사(進獻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55년 도승지·이조와 공조의 참의·부제학을 역임하고, 1558년 용양위호군(龍驤衛護軍)·한성부우윤을 거쳐 1559년에는 임꺽정(林巨正)의 무리들이 들끓자 황해도관찰사로 나가 치안 유지에 노력하였다.
1564년 대사헌이 되었으며 공조·호조·예조판서를 역임하고, 1567년 대사헌이 되었으며 지경연사(知經筵事)가 되어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568년(선조 1) 우찬성을 거쳐 1571년 우의정, 1572년 영의정에 올랐으나 병으로 사직하고 행판중추부사로 죽었다. 덕이 많고 지극히 청렴한 학자·문장가로서 이름이 높았다. 시호는 정숙(定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