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사장(士長), 호는 양졸정(養拙亭). 참찬 이문화(李文和)의 8세손이며, 아버지는 판서 이인(李寅)이다. 박제인(朴齊仁)의 문인이다.
임진왜란 때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의병을 일으켰고, 1606년(선조 39) 무과에 급제하여 절충장군(折衝將軍)·순천부사(順天府使)를 역임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관군 별장(別將)으로 안현(鞍峴)에서 공을 세워 진무공신(振武功臣) 3등에 녹훈되었다.
호산군(壺山君)에 봉하여지고 그가 죽은 뒤 정사공신(靖社功臣)을 책훈(策勳)하여 관작을 추증한다는 뜻으로 예조에서 제문을 지어 치제(致祭)하였다. 호조판서에 추증되고, 함안 도천사(道川祠)·도계서원(道溪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