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인평대군은 효종의 아우로, 그는 글씨와 그림에 능하였고, 제자백가(諸子百家)에 능통할 만큼 학문에 심취하는 면학자세를 보였다. 시호는 충경(忠敬)이다.
이 비는 묘소 좌측 아래에 있으며 정면 2칸, 측면 1칸의 7평 크기 비각 속에 2기를 안치하였다. ‘麟坪大君遷葬時別遣右承旨致祭文(인평대군천장시별견우승지치제문)’이란 비문은 1693년(숙종 19)에 쓰고 1724년(경종 4)에 세웠다.
비문 전 · 후면은 각각 효종과 숙종의 어제어필(御製御筆)이며, 전액(篆額)은 서평군(西平君) 효(穘)가 썼다. 다른 하나의 비는 왕이 신하를 보내어 이를 치제하게 한 내용과 제문을 적었다. 상단은 영조가, 하단은 정조가 각각 어제어필하였다.
인평대군의 묘는 조선시대 전형적인 능원제(陵園制)의 예에 따라 정교한 석물(石物)들로 단장되어 있다. 특히 묘소 아래의 신도비(神道碑)는 귀부(龜趺)와 이수(螭首)의 문양이 뛰어난 조선시대 전형을 보여준다.
또한 신도비의 변천사나, 효종과 숙종 등 조선 후기 임금들의 인간애나 학문적인 관심사를 단편적이나마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