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중온(仲溫), 호는 금강(錦江). 적개공신(敵愾功臣) 장말손(張末孫)의 후손이다.
1679년(숙종 5)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참봉이 되었고, 1691년 학행(學行)으로 6품직에 초수(超授: 단계를 뛰어 넘음)되어 개령현감이 되었다.
이 때 청렴하게 혜정(惠政)을 베풀어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다. 2년 뒤 감찰로 소환되었으나 사직하고 향리인 영천[榮川, 현 영주(榮州)]으로 돌아갔다. 이후 학문 연구에만 전념하여 사서삼경에 관통하였고, 특히 『대학』에 정진하였다고 한다.
또, 부모를 섬기기에 정성과 효를 다하여 당시에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죽은 뒤 영천(현 영주)의 운곡서원(雲谷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