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사탁(士卓), 호는 가재(嘉齋).
1651년(효종 2) 무과에 급제하고, 용맹을 인정받아 북벌을 기도하던 효종에 의하여 발탁되었다. 이상진(李尙眞)·소두산(蘇斗山)과 함께 3걸로 불렸다.
내외의 무관직을 역임한 뒤 수령이 되어 여러 군현을 다스렸다. 1662년(현종 3) 고부군의 환곡허록사건(還穀虛錄事件)과 관련하여 일시 처벌받았고, 1672년경에는 정초중군(精抄中軍)이 되기도 하였다. 1673년 함경도남병사에 임명되어 이후 4년간 봉직하였다.
이 때 함경도 군향(軍餉) 환곡(還穀)의 부족분 7,706석의 탕감을 관철시켜 백성들의 칭송을 들었다. 그 뒤 총융사를 거쳐 포도대장에 이르렀다. 일찍이 철산부사가 되어 억울하게 죽은 장화(薔花)·홍련(紅蓮)의 원한을 풀어주었다고 한다.